드디어 그동안 동이에게 목에 걸린 가시같았던 검계의 문제가 끝났습니다. 도대체 이 신유년 검계 사건이 무엇이길레. 그동안 이런 생각도 솔찍히 들었습니다. 그 시작이 오태석의 사주에 의한 대사헌 영감의 살해 장면으로 시작되었죠. 남인들의 새로운 세대 교체를 원했던 오태석의 주도하에 주요 남인들이 살해되고 그 누명은 천민 조직 검계에 뒤집어씌웠습니다. 동이의 아비인 최효원과 오라버니인 동주를 비롯해 동이의 동무인 게둬라의 아비까지 모든 검계원이 이 양반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죽었습니다. 이것을 '신유년 검계사건'이라고 부릅니다.
동이는 이 누명을 벗기기 위해 당시 양반을 살해한 사람과 접촉하던 수상한 수신호의 주인인 항아님을 쫓아 궁궐로 들어오게 되었고, 게둬라는 커서 다시 몰락한 검계를 재건한 후 도성의 양반들을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검계. 이제 결판을 내야 할 때>
"누구도 대신하여 주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둬라가 숙종에게 했던 이 말이 맞습니다. 결국 누가 천민의 문제에 귀를 기울여주겠습니까? 천민의 억울한 일과 그들도 사람답게 사는 일에 누가 나서 주겠습니까? 사실 이런 문제는 현대를 사는 오늘날에도 언제나 똑같은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요즘에야 천민이 없지만 항상 가난한 사람과 힘이 없는 사람이 감내해야 하는 억울한 일은 참 많은 것이 현실입니다. 결국 참다참다 못하면 그들이 손수 나설 수 밖에 없고 그제서야 겨우 그들의 문제에 돌아봐 주는 것이죠.
동이는 결국 제 아비를 비롯한 검계에 덧씌워진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는 것이 지상의 과제가 되었고, 게둬라에게는 거꾸로 이런 양반들에게 복수하는 것만이 지상 명제가 되었습니다. 이 신유년 검계사건의 누명을 벗기지 않는 한 천민은 '역시 죽어도 싼' 그런 존재로 영원히 역사 속에 기억되게 될 것이고, 동이의 아비나 오라버니 또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동이는 근본적으로 이 누명을 벗기는 일에 매달렸지만 게둬라에게는 "우리도 사람이니 천민을 그리 죽이지 말아달라"는 시위의 방법으로 양반 살해를 선택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목숨은 귀중한 것입니다. 동질의 가치. 양반들이 천민이라고 함부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희들도 죽는 아픔과 두려움을 당해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복수도 동질의 가치입니다. 동이가 게둬라를 다시 만났을 때 동이는 차마 이런 그를 외면할 수도 죽게 내버려 둘 수도 없었죠. 동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신표를 이용해 자신에게 주어진 몫의 배를 운행할 수 있는 까닭에 게둬라를 도성에서 빼내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다가 끝내 발목이 잡히고 만 것이죠. 더불어 미처 해명하지 못한 과거의 억울한 누명-역적 검계의 수장 최효원의 딸이었다는 사실마저 드러났습니다.
<죽기를 각오하는 운명과 이를 거부하는 숙종의 고뇌>
이제 정녕 모든 것을 끝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헌데 어떤 사람에게는 차라리 모르고 사는 진실이 편하고, 사실을 알아도 모른 척 하는 것이 좋은 것이 있습니다. "한마디도 하지 마라. 죄를 달게 받을 것이라니 네가 어찌 내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냐?" 너는 거짓말을 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은 내가 덮을 것이다. 숙종은 동이에게 차라리 간청할 지경이었습니다. 숙종이 동이의 일을 덮으려고 하자 장옥정(장희빈)은 그렇다면 어디 두고보자고 합니다. 동이의 천성으로 가장 감당하기 힘든 일 하나가 있는데 바로 아랫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입니다. 장무열은 동이만 놔두고 그녀의 모든 처소 나인들과 동이 편인 감찰부의 궁녀들을 한성부로 끌고 갔죠.
임금이 숙원의 죄를 알고도 감춘다는 소문이 돌고 '대역죄를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남인들의 주청과 유생들의 탄원까지 빗발치지만 숙종의 마음은 끄떡없습니다.
동이에게 이 두가지 일은 견디기 힘듭니다. 동이의 발길은 한성부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숙종은 말을 달려 급히 한성부로 가지만 이미 동이는 자신의 신분, 과거 검계수장 최효원과의 관계, 새로운 검계수장 게둬라를 도우려 한 일을 모두 고백했습니다. 그대신 끌려온 모든 처소의 나인들과 감찰부의 궁녀들을 풀어달라고 했던 것이죠. 뒤늦게 온 숙종이 말합니다. "이 죄를 시인하면 너는 결코 무사할 수 없다. 네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중신들이 몰아세울 거란 말이야." 그럼에도 숙종은 제 손으로 동이를 처벌하는 일만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소리친 후 나가버립니다. 심지어 서용기에게 무서운 얼굴로 말합니다. "이 순간부터 난 임금이 아니네. 난 무엇이든 할 것이야."하고 말입니다.
동이의 운명 앞에 한 사내가 자신의 모든 권력을 이용해서 맞서려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백성과 모든 신하의 주청과 탄원과 여론에 홀로 맞서는 고독하고 처절한 싸움입니다. 이를 동이가 모를 리가 없습니다. '제발 저를 놓으세요. 더 이상은 그렇게 무너지지 마세요, 전하.' 동이는 마음 속으로 애원합니다.
아무리 임금이 홀로 버틴다한들 동이의 죄는 너무도 명백하므로 죽음을 면할 수는 없습니다. "나라의 윗전이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검계를 비호하다니요. 어찌 이렇게 참혹한 변이 있을 수 있습니까?" "숙원의 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숙원을 사사하시고 이 나라 종사와 왕위를 바로 세우셔야 하옵니다." 주청과 탄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동이를 구할 명분은 사실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직 임금인 숙종의 고집 뿐입니다. 인현왕후와 서인들이 동이를 돕고 싶다 해도 단 하나의 지푸라기라도 잡을 만한 명분이 없는 것이죠. 결국 죽어야 하는 순간이 왔다고 봅니다.
하지만 숙종의 마음 또한 대단합니다. 절대 꺾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든 관리들이 등청을 거부합니다. 이젠 모든 조정의 업무가 마비될 지경에 이릅니다. 이에 대해 숙종은 그럼 모두 사직서를 받으라고 합니다.
"조정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그래, 난 그리할 작정이네." 하지만 숙종이라고 어찌 마음의 고뇌가 없겠습니까? 아무리 동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깊다고 해도 이 나라가 동이 한 사람만을 위하는 나라는 분명 아닐 것이고, 임금이라는 자리가 동이 한사람 만을 위한 자리도 아닌 겁니다.
"내가 전하께 너무 큰 죄를 짓고 있는 것 같애."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는 동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릅니다.
<아들 영수의 죽음>
왕자 영수가 마진[홍역]에 걸립니다.이 영수의 죽음은 동이에게는 또한 죽음과 같은 고통입니다. 숙종에게도 말입니다. 영수가 처음 태어났을 땐 하루에 세 번이고 네번이고 왕자를 보러갔던 숙종입니다. 인현왕후 또한 이 어린 왕자를 좋아했습니다. 아니 아꼈다고 할까요? 인현왕후와 서인들은 이 영수에 의지해 장차 미래를 도모하는 마음도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인현왕후는 그런 것을 떠나 동이의 삶이 한 여자의 인생으로써 너무 슬플 겁니다.
영수 왕자의 관이 능지로 옮져지는 일이 끝나자 곧 왕자가 쓰던 처소는 폐지가 되고, 동이는 사당에서 왕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영수의 죽음은 한편 동이에게 역설적으로 기사회생의 명분을 주고 있다는 것이죠. 일단 동이는 먼저 죽기를 자처합니다.
"전하. 이제 그만, 그만하게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더는 소중한 어떤 것도 잃고 싶지가 않습니다." 동이는 숙종을 찾아가 힘없는 음성으로 말합니다. 자신으로 인해 모든 백성과 신하들로부터 불신과 외면을 당하는 숙종이 가여운 것이죠. "전하, 전하께서 제게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알아주시겠습니까? 그러니 저로 인해 전하께서 힘겨워지는 일을 더는 보지 않게, 저에게 그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 말에 숙종은 자신이 버티면 버틸 수록 결국 동이의 마음만 아파질 거란 걸 깨닫습니다. 아니 이미 알았지만 이젠 자신이 양보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숙종은 결국 조정에서 신하들을 모아놓고 이번 검계사건과 동이에 대한 처결을 내립니다. 검계의 수장 게둬라는 결국 참수에 처하고 그를 따르던 나머지는 유배에 처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유년 검계사건에 대해 무고임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허나 지난 신유년 검계의 일은 비록 저들이 죄인이라 해도 양반을 주살한 혐의는 무고임이 밝혀졌으니 그 억울함을 풀고 죄를 신원할 것이요."
이 일은 동이의 평생 소원이자 가슴에 맺힌 한이었습니다. 숙종은 마지막으로 동이의 그런 바램을 풀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신유년 검계사건에 관련한 모든 자들의 신원 회복이야말로 진짜 동이에게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젠 떳떳하게 천가 동이가 아니라 최가 동이라고 불리어도 됩니다. 결국 이 문제는 동이의 앞으로의 행보와 태어나는 연잉군의 앞날에 큰 걸림돌이었던 문제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차천수 또한 유배형에 처해집니다. 문제는 동이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숙원은 지난날의 신분을 속인 채 도주한 검계를 숨겨준 죄를 저질렀고. 하여 숙원의 죄 또한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요. 허나 왕자를 잃은 숙원의 처지를 참작해 그 목숨만은 구명할 것이요. 대신 이 시각 이후로 다만 후궁의 이름과 지위만 유지할 뿐, 후궁으로써 모든 예우를 거둘 것이고, 또한 숙원을 궐밖 사가로 내쳐 과인 또한 다시는 숙원을 찾지 않을 것이요."
숙종이 이러한 처결을 내린 마당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습니다. 심지어 남인들 사이에서도 왕자까지 죽은 마당에 동이에게 사사까지 내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는 중론까지 있었던 겁니다. 결국 왕자 영수는 절대절명의 순간에서 어미인 동이의 목숨을 살리는 명분과 기회를 주고 간 것입니다.
<동이가 살아나는 또 다른 길>
이런 결정에 대해 유일하게 걱정하는 이가 있으니 동이와 숙종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장옥정입니다. 장옥정은 다시 숙종이 사가에서 동이를 불러들일까봐 걱정입니다. 숙종이 동이에게 품고 있는 마음을 보면 조금도 방심할 수 없습니다. 장무열의 생각에는 동이를 사가로 내치고 다시는 찾지 않겠다는 결정은 내린 것은 숙종입니다. 만일 이를 훗날에 번복한다면 임금으로써의 신뢰와 명분을 스스로 잃는 것이고, 숙종의 동이에 대한 이 때의 처결도 다시 문제 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의 결정이 명분을 잃었으르로 이점을 핑계로 다시 동이를 사사할 것을 주청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옳아보입니다. 하지만 역시 사람의 앞날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럼 이런 것은 어떨까요? 우연히 술에 만취한 숙종이 그만 하룻밤 사가의 동이를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술취한 동이를 그리로 이끈 죄[공?]는 그를 모시던 상선영감을 비롯한 시종들에게 있다고도 할 것입니다. 동이가 그로 인해 아들을 잉태하고 왕자를 낳은 것이죠. 왕자가 사가에서 커갑니다. 왕실의 입장에서 이 문제는 고민입니다. 왕의 핏줄인 왕자가 천민들의 틈 속에 자라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두고 볼 수 만은 없는 문제입니다. 이 경우 당연히 인현왕후가 내명부의 수장으로써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서인들 또한 이 새로운 왕자를 눈여겨 볼 것입니다. 명분은 충분합니다. 왕자가 궐 밖 사가에서 자라게 놔둘 수는 없다는 것이죠. 그럼 왕자를 불러들인다면 그 어미 또한 불러들이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죠.
어쨋든 왕자까지 죽고 동이를 꺾어 사가로 내치게 만들었지만 장옥정의 표정은 밝지가 않습니다. 그녀는 꼭 동이의 목숨을 끊고 싶겠지만 결국 왕자 영수의 죽음이란 명분 앞에 더 이상 주장할 처사가 없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사람을 얻은 동이의 힘. 옥정과 다름>
그전에 숙종에게 '반촌에서 나고 자란 오작인의 여식. 신미년에 죽은 검계수장의 딸'이란 고백을 하고 보경당으로 돌아왔을 때 동이는 처소의 모든 나인들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동이는 이미 자신에게 닥칠 운명을 받아들일 결심을 한 것입니다. "모두 물러가게. 이 시각 이후 처소에 누구도 남아서는 안되네." 하지만 상궁과 나인들을 모두 거부합니다. "아니오. 소인들은 누구도 그럴 수 없습니다." "나로 인해 자네들까지 다치지 않게 해주게." 동이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원하지만 거꾸로 상궁과 나인들은 무릎을 꿇고 애원합니다. "모든 것을 전해들었습니다. 마마께서 가는 길은 함께 저희도 갈 것입니다. 그러니 저희를 내치지 말아주시옵소서."
왜 상궁과 나인들이 이런 의리를 보이는가 하면 동이가 먼저 그런 마음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동이는 혹여 감찰부의 상궁와 나인들이 연루되어 위험해질 수도 있는 일은 절대 그들의 손을 빌리지 않았습니다. 동이는 자신이 높다고 무조건 하대를 하지 않고 그들과 진심으로 친했습니다. 죄를 진 유상궁 등에게도 용서하는 아량을 베풀었습니다. 동이가 마음을 먼저 주었기에 다른 사람도 그런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동이에 대한 처결이 내려진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마 가라하셔도 소용없습니다. 저희는 마마를 따라갈 겁니다." 보경당을 나서니 봉상궁과 애종이 아예 보따리를 싸서 같이 떠날 태세를 마치고 말합니다. 또한 감찰부에서 동이를 모시겠다고 나옵니다. 서용기를 비롯한 내금위의 군관들과 심운택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역사를 아는 자는 무너지는 담벼락에 기대지는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너진 권세에 서면 정적들의 미움을 받는 것이죠. "대체 어쩌려고들 이러십니까? 고초를 겪으신지 얼마나 되셨다고 또." "모두 마마께 배운 것입니다. 마마께서도 저희에게 그리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동이가 궐을 나갈 때 모든 궁궐의 나인들과 내관들이 나와서 고개를 숙입니다. 한때 동이의 적이었던 유상궁과 시비, 은금까지 안타까운 눈으로 배웅합니다. 동이가 월동문을 통과하고 지나갈 때마다 그곳에는 고개를 숙이는 나인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진심으로 동이의 앞날을 걱정하고 그 마지막을 함께 해주며 배웅하는 것입니다.
동이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사람을 얻었습니다. 이들이 이순간 동이에게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닙니다. 다만 동이가 그들을 잡아 끈 것입니다. 동이는 이를 아느지 모르는지 가마 속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이에 반해 장옥정은 어떠했나요. 그녀가 중전의 지위에서 폐위되고 중궁전을 떠나 취선당의 옛 처소로 향할 때 모든 궁녀나 내관의 구경거리만 되었을 뿐입니다. 하나같이 모두 고소하다는 듯 키득거리거나 서로 웃으며 뒤에서 쑤군거렸습니다. 그녀를 지지하던 남인들은 또 거침없이 뒤돌아섰습니다. 이를 볼 때 장옥정이 사람을 부리는 권모술수는 뛰어날 지언정 마음을 진심으로 얻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어떤 땐 지금은 비록 장희빈의 오른팔로써 한 몫 톡톡히 하는 장무열이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장무열은 자신의 부친이 죽은 일에 오태석뿐만 아니라 장옥정도 관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장무열은 정치를 하고 있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정치란 권력의 행방에 따라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입니다. 오태석이 장옥정이 중궁전에서 내쳐질 때 도움을 거부하고 등을 돌렸듯이 장옥정이 절체절명의 상황이 온다면 어쩌면 꼭 배신할 것도 같습니다.
<세상 가장 낮은 사람에게도 가장 밝은 빛이 되는 사람으로 자라주렴>
동이는 사가에서 직접 호미를 들고 밭일을 합니다. 봉상궁과 애종은 기어코 동이를 따라와 각종 허드렛일을 하며 동이를 수발합니다. 어느날 숙종이 술에 잔뜩 취한 채 찾아옵니다. 저는 이런 면에서도 동이가 사람을 얻고 있다고 봅니다. 인사불성이 된 숙종이 아무리 동이를 찾았다고 해도 만일 상선영감의 마음이 동이를 좋게 보지 않는 면이 있었다면 결코 숙종을 이대로 오게 내버려두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마 어서 안으로." 상선영감은 동이에게 이처럼 말합니다.
숙종은 술을 빌어 그토록 보고 싶고 또 밉기도 했던 동이를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정말 할 말이 있었습니다.
"차라리 함께 도망가자 동이야. 그냥 이대로 나와 함께 말이다. 하아. 그래 너는 안된다고 하겠지. 내가 임금이니까. 난 임금으로 살아야 하니까. 그럼 사람으로는 어찌 살아야 한단 말이냐?" 동이를 못 보는 것이 고통스럽고 그래서 동이가 원망스럽고 밉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네가 너무 그립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 말을 하고 숙종은 동이의 품에 쓰러지고 맙니다.
숙종은 처음부터 항상 동이가 좋았습니다. 만남부터가 임금과 천인을 떠나 마치 한 사내와 여자처럼 만났죠. 동이의 성품이 자신보다 남의 억울함을 밝혀주는 일에 마치 내일처럼 두 손 걷어붙이고 나서는 면이라든가 그런것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녀가 남을 위할 수록 숙종은 그녀를 위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그녀가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해도 숙종의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왜 그것을 실토했냐는 원망뿐이죠.
동이가 지은 죄는 자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지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장옥정이 등록유초사건을 벌였을 때 숙종의 마음은 그녀에게서 완전히 떠났습니다. 장옥정은 항상 자신의 권력과 사리사욕을 위해서 움직였고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장옥정은 숙종의 마음을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결국 사가에서 보낸 이 하룻밤으로 왕자 금이 잉태가 되고 달이 차서 태어나게 됩니다.
서용기에게 이 소식을 들은 숙종의 표정은 기쁨을 겨우 감추는 듯합니다. 결국 눈을 감고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비록 다른 말은 없었지만 숙종은 왕자에게 금이라는 이름을 내려줍니다. 숙종은 궁궐의 높은 정자에 올라가 어디쯤을 한참 바라본 후 "그만 가세"하고 말합니다. 아마 비록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궐밖 사가의 동이와 그녀가 낳은 왕자가 너무도 보고 싶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숙종은 자신이 신하들 앞에서 한 약속때문에 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6년 후, 왕자 연잉군>
갑자기 드라마가 풋풋한 아역들의 시대로 돌아가자 모처럼 활기차고 보기 좋았습니다. 마치 '동이' 첫회에서 동이가 친구 게둬라 등과 함께 창말 아이들과 시장에서 달리기 경주를 하던 떠들썩한 분위기 같이 말입니다. 헌데 이 왕자, 6년 후면 금이 이제 7살인가요? 꽤 말썽꾸러기 같습니다. 반촌에 사는 천민 아이들과 동무로 어울려보고 싶어서 졸졸 따라다닙니다만 영 말투가 이상합니다. 사신행차를 구경한다고 초가집 지붕에 올라갑니다. "다들 조심하거라. 아래를 잘 살피고 알았느냐?" 아이들은 괴상한 표정으로 이런 금을 바라봅니다.
반촌에서 그가 겪는 천민들의 생활 그리고 동무들과 나누는 이 삶이야말로 장차 금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왜 영조가 천민들의 왕이 되는지가 바로 이 짧지만 긴 추억에서 비롯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지붕이 무너져 마침 술을 먹전 양반들 술판에 떨어졌으니, 양반 하나가 아이 하나를 잡고 호되게 팹니다. 이를 본 왕자 금은 나서서 그런 양반을 따끔하게[?] 혼냅니다. "보아하니 자네는 글을 읽은 선비인 듯 한데 선비의 언행이 어찌 그리 무도하냐?" 왕자 금으로써는 어미인 동이에게 받은 교육이 바로 왕자로써의 교육이니 말조차 근엄하고[제 딴엔 말이죠] 유교 경전 구절을 들어가며 '하거라' 합니다. 이를 당하는 어른 양반 입장에서는 기가막힙니다.
"못 들었느냐? 나는 이 나라의 왕자라 했다."
결국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얻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임금이 가난한 백성과 천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진정한 한나라의 왕이라 할 것입니다. 동이는 그 모범을 보였으니 이제 그 아들이 배울 차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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