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광복 72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에 잡지『출판매거진』에서 광복 50주년을 맞아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짚어본 적이 있어 그 기사를 올립니다.
해방 이후 베스트셀러의 역사
* 이 기사는 중앙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 논문집 《베스트셀러의 요인에 관한 연구》(신문방송학과, 이임자), 1991년 6월부터 부산일보에 6개월간 연재되었던 기사 <추적 반세기>, 1994년 3월 24일 매일경제신문의 <창간 28돌에 살펴본 시대별 베스트셀러 28권>, 출판저널 등의 자료를 참고하였음을 밝혀 둔다. 또한 조병화 시인, <문예출판사>의 전병석 사장, <삶과꿈>의 배인준 본부장 외 여러 출판인들이 도움 말씀을 주셨다.(편집자 주)
올해는 8ㆍ15광복을 맞은 지 50년이 되는 해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할 것 없이 총체적인 변화를 겪어 왔다. 그렇다면 반세기에 걸친 격변의 시대를 거치는 동안 우리의 독서 경향은 어떤 변화를 겪었을까? 한 권의 책이 단지 한 사람의 저자에 의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저자, 출판인, 독자,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이 한데 어우러져 비로소 한 권의 책이 탄생된다. 그러므로 책 한 권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은 크다. 더욱이 이런 책이 수많은 독자들에게 읽혀져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것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험이며 시대적 산물이라는 면에서 베스트셀러에 대한 부정적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 의미는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독서의 흐름은 어떻게 변화했는지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변천사를 살펴본다.
해방 이후~1950년대
해방을 맞아 갑자기 실현된 출판 자유화와 우리말을 표현 수단으로 선택하게 되었다는 감격은 활발한 출판 현상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런 의욕과는 달리 출판 여건은 매우 열악하였다.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국문활자가 없었고, 용지, 인쇄자재 등도 절대 부족하였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출판이 이루어진 것은 사업이라기보다는 애국애족한다는 민족적 선비 정신을 바탕으로 한 요소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을유문화사에서는 미국 록펠러 재단의 원조로 《우리말 큰사전》이라는 기념비적 출판이 이루어졌다. 1946년에는 협동문고ㆍ박문문고ㆍ을유문고ㆍ정음문고ㆍ민중문고 등 제1기 문고 출판 붐이 일어났다. 또 우익과 좌익 세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분위기에서 선동매체와 특수목적을 위한 도구로 출판물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1947년 8월 11일을 기해 좌익 진영에 미증유의 일대 검거 선풍이 일어나면서 이런 추세는 점차 퇴조하였다. 6・25 이후에는 전후 윤리 도덕의 타락상과 전쟁의 비극과 상처가 출판에 반영되었다.
도서 판매는 주로 노점이나 가판에서 이루어졌다. 아직은 서점이라는 형태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우리 글로 이루어진 책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거의 열광적이었다.
소설로는《자유부인》(정비석ㆍ정음사)만큼 화제를 모은 베스트셀러도 드물 것이다. 이 소설은 50년대 초의 극성스런 춤바람과 윤리도덕의 타락을 고발한 것인데, 서울신문에 연재되던 이 소설이 단행본으로 출판된 첫날 초판 3천부가 모두 팔렸다. 연재 당시 작가 정비석과 서울대법대 황산덕 교수는 지상논쟁을 하였고, 연재가 시작된 해인 1954년 4월 1일 <제일신보>에는 ‘遂! 자유부인 말썽-정비석씨 황산덕 교수 간에 난투극, 쌍방 중상으로 입원 중’이라는 만우절 기사가 게재될 정도였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삼각관계를 다룬 소설《청춘극장》(김래성ㆍ청운사)은 6ㆍ25의 비극 속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전선 용사의 포켓이나 부상병의 침대 머리맡에 놓여 있곤 했다. 추리기법으로 쓰여진 최초의 소설로 연애소설을 읽지 못했던 북한 피난민들에게 매우 인기가 높아 보름 만에 2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김삿갓 방랑기》(김용제ㆍ문예서림)는 역사적 실제 인물을 재조명해 베스트셀러가 된 최초의 책이다. 이 책은 김용제의 별명을 ‘친일 문인’에서 ‘김삿갓 전문가’로 바꿔놓았다.
1959년에는 이화여대 2학년생인 최희숙 씨가 자신의 애정 행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일기체 산문집《슬픔은 강물처럼》(최희숙ㆍ신태양사)을 출간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5만여 부가 순식간에 팔려 베스트셀러의 이름을 얻었지만, 저자는 학교 명예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제적당했다.
50년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 시집으로는《사랑이 가기 전에》(조병화ㆍ정음사)를 들 수 있다. “이렇게 될 줄 알면서도/ 당신이 무작정 좋았습니다…”라는 구절이 유명한 이 시집은 1주일 만에 2천부가 팔렸다. 1년간 4만여 부, 4년간 10만 부가 팔렸는데 갑자기 저자의 요구로 출판 정지하여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저작권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던 시대에 출판사들끼리의 문제, 문학성 논란 등에 지친 작가가 출판 중지를 요구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렌의 애가》(모윤숙ㆍ청구문화사), 《마음의 샘터》(최요안ㆍ삼중당)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다.
번역서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으로는 처음 번역된《의사 지바고》(보리스 파스테르나크ㆍ여원사)를 들 수 있다.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면 무조건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1960년대
4ㆍ19혁명과 5ㆍ16 군부 쿠데타를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허탈감에 빠졌던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은 호화장정의 전집물이 출판의 주류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일본책을 중역한 것이 대부분이지만 외국문학전집 번역이 활발하였고 전집물 출판이 활성화되면서 판매 방법도 달라졌다. 외판에 의해 할부판매가 성행했는데 이런 현상은 독자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안겨 줌은 물론 서점을 위축시켰다. 이에 대한 반동으로 1966년에는 민음사ㆍ문예출판사ㆍ범우사 등 단행본을 고집하는 출판사가 잇따라 설립되었는데 이들 출판사들은 오늘날 명예와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들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1960년도에는 자유당 정권이 무너지자 자유당 독재정권의 숱한 비리들을 모은《흑막》(신태양사)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책이 나오기 전에 신문 예고광고를 내는 등 적극적으로 홍보활동을 벌여 단시일에 10만 부가 팔렸으나 출판사는 정치깡패들이 쳐들어온다는 소문과 협박전화를 받으면서 베스트셀러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기도 했다.
1961년에는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의장의 딸이었던 허근욱의 수기《내가 설 땅은 어디냐》(허근욱ㆍ신태양사)가 발간돼 화제가 되었다. 부모와의 이별, 부모를 찾아가기 위한 월북, 6ㆍ25때의 월남, 남편의 외도, 남파간첩 혐의로 인한 곤욕 등 한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가혹한 운명을 겪어내야 했던 허근욱의 수기는 일주일 만에 초판본 5,000부가 모두 팔렸다.
다소 선정적인 제목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모았던《청춘을 불사르고》(김일엽ㆍ문선각)는 재출간하여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다. 처음에는 독자를 승려로 한정하여《어느 修道人의 회상》이란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그 이후 출판사 쪽에서 정한《청춘을 불사르고》란 제목으로 출간한 지 한달 만에 재판에 들어갔다.
청마 유치환이 시조 시인 이영도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모은《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유치환ㆍ중앙출판공사)는 두 사람이 유명한 문인이었기 때문에 더욱 독자들의 반향을 일으켰다. 두 사람의 정신적인 사랑이 독자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5ㆍ16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의 강압 정치 등으로 냉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독서계를 강타했던 무협소설이 있었는데,《정협지(情俠誌)》(김광주ㆍ신태양사)가 바로 그것이다. 무협영화를 만들겠다는 영화사에서 김광주 씨에게 검법과 장풍 쓰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는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용공성을 띤 신문사의 편집국장이라는 이유로 수감되어 그 속에서 만난 많은 사형수들의 이야기들을 묶어 1년 동안 15쇄를 찍은《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양수정ㆍ휘문출판사), 박경리 씨는 확고한 인기작가로 만들었던《김약국의 딸들》(박경리ㆍ을유문화사), 4개월 동안 5만부가 팔리고 영화로도 만들어진《저 하늘에도 슬픔이》(이윤복ㆍ신태양사), 김찬삼의《세계일주 무전여행기》(김찬삼ㆍ어문각), 《젊은 날의 고뇌》란 제목으로 56년 출간되었다가 10년 만에 다시 원제로 출간된《데미안》(헤르만 헤세ㆍ문예출판사),《생의 한가운데》(루이제 린저ㆍ문예출판사) 등도 1960년대의 기억할 만한 베스트셀러다.
1970년대
경제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던 이 시기에는 생활의 여유와 더불어 물질만능 풍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한편으론 공화당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도 강하게 일던 시기다. 60년대 외국번역문학의 붐이 한풀 꺾이면서 독자들의 관심이 국내 문학작품으로 옮아 온 것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1970년대에 출판계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검인정 교과서 사건’이다. 탈세와 뇌물 등 부정으로 출판인, 공무원 등이 구속되면서 출판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각 출판사는 단행본 출판으로 눈을 돌렸고, 신생 출판사가 대거 등장하여 출판계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하다. 전집류보다는 단행본이나 문고본 출판이 붐을 이루었다. 1976년에 이르러 30여 출판사에서 1,000여종의 문고본을 출간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삼중당 문고는 3백 종, 연간 250만 부를 돌파하기도 했다.
또 1977년에는 도서의 정가 판매제가 정착되면서 무려 1천여 개의 서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특히 1979년에 700평 매장으로 문을 연 ‘종로서적’은 서점 대형화의 선두주자로 기록되었다. 또 이 시기에는 100원권, 300원권, 500원권 등 3종의 공통도서권이 발행되기도 했다.
베스트셀러 수준도 이전의 수천 부에서 4~5만 부까지 양적 팽창을 가져왔고, 1976년은 국내 출판 사상 처음으로 발행종수 1만 종을 돌파했다. 하지만 1972년 10월 17일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유신 정권 하에서 긴급조치 등의 이유로 불온도서 33종, 음란 저속도서 44종 등 모두 77종의 도서가 판매 금지되기도 했다.
1971년은 《러브 스토리》(에릭 시갈ㆍ문예출판사)의 해였다. 당시 경영에 곤란을 겪었던 문예출판사는 이 책이 나온 지 20일 만에 3판을 찍는 등 한 해 10만 부를 판매하는 쾌거를 올렸다. 10여 개 출판사에서 앞 다투어 이 소설의 졸속 번역물을 냈고, 100원인 원서 복사판까지도 1만 부가 팔리는 일대 선풍이 일어났다.
1973년 겨울 출판계를 강타했던《별들의 고향》(최인호ㆍ예문관)은 다음해 출간된 《英子의 全盛時代》(조선작ㆍ민음사)와 함께 ‘호스티스 소설’의 붐을 일으켰던 문제작. 1974년에 동명의 영화가 만들어지면서 더욱 부채질을 해 1975년 말까지 40여만 부의 대기록을 세웠다. 그 당시 술집의 아가씨들이 모두 ‘경아’란 이름으로 개명하는 해프닝을 낳기도 했다.
정부의 고도 경제성장 정책 등으로 이루어진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민이나 도시 빈민 등을 다룬 소설들도 나왔다. 그 중 베스트셀러가 된 대표작으로《부초》(한수산ㆍ민음사)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ㆍ문학과지성사)를 꼽을 수 있다.《부초》는 산업화로 인해 도태되는 한 서커스단의 해체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소설이다.《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대학가에서 붐을 일으켜 베스트셀러가 된 최초의 출판물. 이 소설은 사회과학을 공부한 학생들에게 먼저 읽히며 6개월 동안 10만 부 이상 팔리던 대학생의 필독서였다.
1979년도에는 두 개의 종교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채를 띠기도 했다. 기독교를 소재로 한《사람의 아들》(이문열ㆍ민음사)과 불교를 소재로 한《만다라》(김성동ㆍ한국문학사)가 바로 그 소설이다.《사람의 아들》을 출판한 민음사에서는 무거운 주제 때문에 상업성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7개월 동안 10쇄를 찍는 예기치 못한 이변이 일어났다. 이후 이문열 소설은 출간만 되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979년 11월에 파계승을 통해 기존 불교계를 비판한 소설이《만다라》다. 이 소설은 김성동의 데뷔작이면서 출세작이 되었다. 6년간 43만 부가 판매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출판사 쪽에서는 환속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잘 모르던 저자에게 13만 5,000부의 인세만 지급해 출판사의 비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10ㆍ26의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초판 5,000부가 3일 만에 매진되었고, 6개월 동안 10여만 부가 팔렸다.
그 밖에《偶像과 理性》(리영희ㆍ한길사), 《解放前後史의 認識》(송건호 외ㆍ한길사) 등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이론적 접근을 시도한 책들 또한 암울한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의 지적 요구를 채워주며 베스트셀러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갈매기의 꿈》(리처드 바크ㆍ문예출판사), 《어린왕자》(생텍쥐페리ㆍ문예출판사) 등 외국 번역작품 문학도 꾸준히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1980년대
‘광주’로 상징되는 정치적 격변과 함께 시작된 1980년대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출판계도 전환기였다. 정치사회적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던 80년대 초기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념서적에 대한 독서 열기가 사회로 퍼져나갔고 사회과학 출판사들이 집중적으로 생겨나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던 시기이기도 하다.
황석영의《어둠의 자식들》(황석영ㆍ현암사)은 80년대 초, 그 시대적 상황을 반영한 문제작이다.
1981년 6월에 1,100평의 규모를 가진 ‘교보문고’가 개장되면서 서점문화의 빠른 변화를 가져왔다. 대형서점의 잇단 출현으로 종로와 광화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소형서점들이 80년대 중반에 들어서며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사회과학 서적들은 대학가를 중심으로 한 상권을 형성했다.
80년대의 가장 큰 특징은 가치혼란 위기감을 악에의 보복(《인간시장》)이나 영웅(《단》, 《영웅문》, 《장길산》) 이야기로 보상받으려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인간시장》(김홍신ㆍ행림출판사)은 원래 ‘스물두 살의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주간한국>에 연재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베스트셀러를 넘어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연재되던 당시 독자들의 반응이 좋자 신문사 측에서는 통상 1년 연재하던 것을 5년으로 연장하기도 했다. 총 20권으로 나온 이 소설의 1권은 출간 2년 만에 한국 최초로 1백만 부를 판매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런 현상은 광주민주항쟁을 전후한 80년대 초의 어두운 상황에서 ‘장총찬’이라는 인물을 통해 대리만족을 찾는 독자들의 심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80년대는 시의 시대라 할 만큼 시집의 판매가 활발했던 시대로 기록된다. 딱딱한 이념서적과 민중문학의 틈새에서《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이해인ㆍ분도), 《접시꽃 당신》(도종환ㆍ실천문학) 등의 시집이 대중을 파고들었고 한국시집 사상 최초로 100만 부를 돌파한《홀로 서기》(서정윤ㆍ청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무명시인이던 서정윤 씨의 책을 내주겠다는 출판사는 흔치 않았는데, 청하에서 400부를 시인이 사는 조건으로 2.000부를 어렵게 발간했다. 그런데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재판을, 그 후 2,000부로는 감당을 못해 1만 부씩 찍어냈다.
출판사의 다양한 광고 전략과 적극적인 판촉 캠페인을 통해 베스트셀러의 양적 팽창이 두드러지게 보였던 시기로 1985년《손자병법》(정비석ㆍ고려원)이 TV에 최초로 광고를 시작해 출판 상업광고의 효시로 기록되었다. 그 이후 신문을 비롯한 라디오 TV 등 매체를 통한 광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게 되었다.
89년 말에는 대우그릅 회장 김우중 씨의 에세이《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김영사)가 출간돼 총수들의 에세이 및 자서전 출간을 유행시켰는데 이 책은 최단 시일(161일) 내에 100만 부를 넘어선 초특급 베스트셀러로 기록되었다.
이외에도 특기할 베스트셀러로는 한국인 분석서《배짱으로 삽시다》(이시형ㆍ집현전), 선도소설《단》(김정빈ㆍ정신세계사),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빨치산을 소재로 한《남부군》(이태ㆍ두레),《태백산맥》(조정래ㆍ한길사)도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1990년대
구소련이 해체,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퇴조하면서 80년대에 강세를 보이던 이념서적들이 급작스럽게 퇴조했다. 그것은 곧 영웅과 전설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중의 시대로 넘어감을 예고했다.
일부 엘리트 계층과 전문작가나 전문필자들에 의해 주도되어 오던 출판문화의 흐름을 깨고 수동적인 위치에 있던 독자들이 적극적으로 출판문화의 흐름에 참여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독자들의 관심과 욕구가 다양해졌고 일방적으로 지식과 문화를 만들어가던 출판사들이 독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출판 역시 다양화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가장 먼저 거론되어야 할 베스트셀러는 역시《소설 동의보감》(이은성ㆍ창작과비평사)이다. 이 소설을 선두로 역사의 실존인물들을 소재로 한《소설 토정비결》(이재운ㆍ해냄),《소설 목민심서》(황인경ㆍ삼진기획) 등이 밀리언셀러라는 이름을 얻었다. 또 1992년 말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맞물려《반갑다 논리야》(위기철ㆍ사계절) 시리즈가 2백만 부 이상 팔리는 기록을 얻기도 했다. 역시 밀리언셀러로 《여보게 저승 갈 때 뭘 가지고 가지》(석용산ㆍ고려원) 바람이 불면서 출판계에 스님들의 에세이집 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핵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죽음에 대한 의문, 북ㆍ미간의 핵협상 등 흥밋거리를 담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김진명ㆍ해냄)는 출판사의 공식적인 발표에 의하면 300만 부가 넘게 팔린 1990년대 최대의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90년대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크게 반향을 불러일으킨 시기이기도 하다. 공지영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문예마당), 신경숙의《깊은 슬픔》(문학동네), 최영미의 시집《서른, 잔치는 끝났다》(창작과비평사)가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하며 인기작가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전문직 여성들의 에세이들도 출간만 되면 10만부를 쉽게 뛰어넘을 정도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베스트셀러는 과연 양서인가’라는 물음에 모든 책이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폭발적인 사랑, 혹은 비판과 질타라는 양극의 대접을 받는 베스트셀러가 대중들의 의식을 획일화시키고 저속화시킨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일부 지식층에 국한되던 문화를 대중화, 일반화시켰다는 면에서 그 공을 과소평가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의 출판은 그 외형적인 질이나 양에 있어 많은 발전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문자를 잃고 살았던 일제시대, 해방, 6ㆍ25, 그 이후 암울했던 정치상황 등 우리의 출판 발전을 막는 요인은 많았다. 그런 시대를 거쳐 먹물만 묻으면 날개 돋친 듯 팔렸던, 책이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요즘은 책의 범람 시대를 살고 있다.
출판사들의 흥망성쇠도 심해 50~60년대 베스트셀러를 냈던 출판사들이 오늘날엔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우들도 있고 그에 따라 책들도 판권이 여러 출판사로 옮겨 다닌 것들도 있다.
요즘은 기획 단계부터 베스트셀러를 겨냥해 출판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대중의 기호와 기획된 책이 일치하여 베스트셀러가 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90년대 들어서는 영상문화에 익숙해지고 전자출판에 대한 활발한 연구와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종이책의 위기를 거론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도서 대여점의 서행으로 백만 부를 넘는 밀리언셀러는 물론, 몇십만 부를 기록하는 베스트셀러도 탄생하기 힘들어 출판이 많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고 하듯이 지난 50년 동안의 출판 흐름의 점검을 통해 우리의 출판 미래를 지혜롭게 대처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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