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예술문화

[스크랩] [영화] 서편제, 천년학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8. 14:16

우연히 외조부께서 지역 농악 쪽에 한 자리 하셨던 분이셨던 탓에 외가집 툇마루에 늘 화려한 단청채색이 된 북이며 장고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아울러 지금 제 집친구도 전통문화 쪽의 전공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오다 가다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한국 전통문화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 중 많은 것은 단군 이래로 죽 있어온 것이라기보다는 조선 후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저고리가 짧은 여성 한복의 옷맵시, 매운 고춧가루 음식들, 형식과 의례에 치중한 유교문화, 등등. 한 사회의 문화는 빠르든 늦든 변화해가는 것이니 ‘민족문화’라는 개념은 한국인에게 항상 있어왔던 어떤 본질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의 여러 모습들 중 어떤 친숙한 이미지에 대하여 명명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이라는 말 자체가 nation의 일본어 번역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라는 주장도 들은 적 있구요.

다시 말해, 한국 전통문화라는 것은 한국의 전통인 문화였던 것을 말한다기보다는 현재진행형으로, 지금 창작되고 시연되는 오늘날의 어떤 문화형식을 일컫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승무나 살풀이도 (누군가가 주장하듯 사찰이나 무속이라기보다는) 조선 후기의 기방무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그 당시에는 전문예술인의 창작물, 일종의 컨템포러리 댄스였겠지요.

그런데 한국 역사는 구한말 이후 100년 가량을 지나면서 대단히 많이 변화했습니다. 식민지의 경험이 있고, 내전과 이에 따른 이념갈등이 있고, 경제개발과 군부독재를 겪었고, 민주화와 글로벌 자본주의화가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식민지의 경험 이후 전통의 단절과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2차 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에는 흔한 일입니다. 구한말을 경험하신 분들은 이제 거의 없겠으나, 일제 말기에 태어나신 분들은 이 모든 것을 한 삶 속에 겪고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문화의 형식도 대단히 많이 변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만 해도 설이나 추석이면 흑백TV로 창극 춘향전이나 심청전을 방영했었습니다. 그리고 외조부는 일일이 국악인들의 기량을 하나하나 평가해 주셨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라 지금은 다 까먹고 없습니다만.)

요즘은 모르겠지만, 십여년 전 전국노래자랑에는 춘향전 중 쑥대머리 대목이나 창부타령 같은 것이 흔히 올라왔었습니다. 송해씨가 진행하기 전 이한필씨가 진행할 때, 그리고 시골에 갈수록 더욱 ‘소리’를 가지고 무대에 오르는 참가자들이 많았구요. 문화라는 것이 몇 백년 천년 단위로 보면 상전벽해할 정도로 변화하지만, 한 세대 안에서는 오히려 대단히 변화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트로트가 일본의 엔카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이 많은데, 저는 트로트의 쥐어짜고 꺾고 내지르는 창법은 판소리와 유사한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음주가무를 즐긴다고 할 때, 가무에 해당하는 전통문화라고 하는 것은 그 존재의 형식이 달라졌습니다. 음악과 무용 분야의 전통문화는 크게 향토의 토속문화와 전문예술인에 의한 무속 또는 교방의 문화, 그리고 국가에서 담당하는 종묘제례약과 같은 관의 문화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우선 농어촌 촌락에 애 우는 소리가 사라져 가면서 삶의 현장에 배어 있는 토속문화가 대단히 약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통문화는 전문예술인에 의한 일종의 엘리트문화가 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전문예술인의 소리와 향토의 소리는 사실 좀 다릅니다. 시골 어르신들이 일하는 노래나 창을 할 때에는 고운 평음으로 무리한 힘 들이지 않고 흥얼흥얼 읊조립니다. 목청을 틔운 예술가들의 소리와는 다른 멋이 있습니다. 그런 소리를 듣는 것은 앞으로 더더욱 어려운 경험이 되겠지요.

그러한 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어차피 모든 것은 변해가는 법이고, 변화에는 항상 양면이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봄나들이 철이 되면 산과 계곡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벌개진 아줌마 아저씨들이 꽹과리를 치면서 어깨춤을 추는 모습이 흔했습니다만 이제는 그것도 관광버스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그것도 원래는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죠. 사고위험이 있으니.) 예전에는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는 일이 많았고 구전가요들도 꽤 있었으나 이제 노래는 노래방에서만 해야 됩니다. 일, 어울림, 예술활동과 같은 삶의 공간들이 예전에는 한 덩어리로 통합되어 있다가 삶이 개인화하면서 분절되어 가는 거지요. 개인을 중시하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하기도 합니다. 공간이 분절되면 개인은 여러 공간들에 대해 어디에 어디까지 참여할 지 선택권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개인화는 한국의 처절했던 근대화 과정 중 가장 마지막 남은 과제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남은 과제는 그러한 개인의 성숙화가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세계질서 내에서 도덕적 덕목을 갖춘 개인으로 생존할 수 있느냐 하는 거 말입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영화 ‘서편제’는 슬기로운 시도였습니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는 놀이마당을 스크린으로 옮기면서, 객석을 완전히 떼어놓고도 스크린에는 놀이마당을 보여주었고, 덤으로 온갖 시청각 이미지들을 배합할 수 있었습니다. 서편제를 보면서 우리는 유봉이 잔치판에서 신나게 벌이는 놀이마당에 참여하고, 정일성 촬영감독님이 찍어내신 아름다운 사시사철의 풍광을 즐기고, 유봉의 고집 센 예술혼이 부딪치고 깨어지는 광경을 조용히 응시하고, 소리꾼 남매의 한풀이에 눈물지을 수 있었습니다. 있는 줄도 몰랐던 판소리는 임권택 감독님이 그려낸 스크린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훌륭히 부활하였습니다.

 

서편제, 1993

 


임권택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을 보면서 새삼 ‘서편제’가 얼마나 중요한, 그리고 훌륭한 영화였는지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오정해씨는 환상 속 여인과도 같은 이미지입니다. 그녀에게는 정말 아무런 속기도 없습니다. 이청준님의 원작 소설 속에서 이런 저런 술집과 화류계를 피할 수 없었던 세속의 스산함이 묻어나지 않고, 그저 아비를 따르는 착한 딸, 집 나간 동생을 기다리는 모성애 가득한 누님으로 그려집니다. 동구 밖 나무 아래에 슬픈 모습으로 서서 동생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은 엄마 품을 오래전 벗어난 어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그 어떤 그리움과 애절함을 대단히 강력하게 자극하였습니다. 영화 ‘축제’에서 소주잔을 앞에 놓고 트로트를 멋들어지게 부를 때에도 ‘서편제’에서 오정해씨의 이미지는 쉽게 씻겨지지 않았습니다. ‘천년학’에서도 그녀의 모습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14년의 세월이 지났으니 살이 붙고 중년 여인의 모습이 나는 것은 틀림없습니다만, 그 속사람은 그대로였습니다. 혁필을 그리던 화가분이 눈의 띄게 나이 들어 보이는 것에 비하면 외모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어요.

 

소리길 장면. 5분에 달하는 롱테이크 씬입니다.

 


‘서편제’에서는 격변하는 시대의 정치 환경 변화도 별로 담기지 않았습니다. 서양 나팔을 불고 울긋불긋 무대화장을 한 악극단이라든가, 장돌뱅이 약장수 패거리라든가, ‘갈수록 소리꾼이 천대받는 세상’에 대한 푸념에서 시대의 변화가 소리판에 미치는 영향을 읽어낼 수 있을 뿐입니다. 대신 갈등은 ‘득음’이라는 예술적 성취를 초점으로 집중됩니다. 김명곤씨와 김규철씨의 콤비플레이는 대단히 탁월했습니다. 동호가 가족을 떠나는 장면에서, ‘제 소리에 제가 미쳐 득음을 하면 정승판서보다도 좋은 것이여 이놈아! 네깟 놈이 뭘 안다고 떠들어!’라는 유봉의 집념이나, ‘이깟 소리광대노릇 안 하면 그만 아녀!’라는 동호의 반항은 이 두 명의 뛰어난 연기자의 몸을 빌어 빛그림자 비치는 스크린에 피를 토하는 인간의 절규를 담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달아나는 동호를 ‘동호야, 너 왜 이러냐’면서 뒤따르는 송화의 애닯음이 부자간의 갈등에 슬픔의 마침표를 맺었습니다. 이 슬픔은 그대로 동호의 한이 되어 죄책감과 연민으로 남은 삶을 누님을 찾아 헤매는 고달픈 여행길로 이끌어갑니다. 길고 오랜 길입니다. 우연히 동호와 마주친 혁필 화가가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고는 끼룩끼룩 대는 갈매기 울음을 배경으로 나른하게 회한에 젖어 “어느 해던가...”할 때 영화는 수십년의 세월을 마술처럼 훌쩍 뛰어넘어버립니다. 나도 마치 그 만큼의 세월을 산 것 같습니다.

한이라는 것. 한을 넘어선다는 것.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영화는 답을 줍니다. 그리워하는 오누이가 다시 만나 서로를 숨긴 채 심청전 한 대목을 협연하는데, 장님 소리꾼이 된 누님의 첫 대사. “아이고 아버지, 여태 눈을 못 뜨셨소.” 이 부분은 다른 명창의 더빙이었다고 들었습니다만, 어쨌든 한 시간 여의 러닝타임동안 지나간 한 세대의 삶을 관통하는 그리움과 연민을 아무런 설명도 필요 없이 그대로 관객의 가슴에 온전히 내리꽂았습니다. 남매의 협연은 김수철씨의 연주곡 ‘천년학’에 덮히며 밤을 지샙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남매는 서로의 ‘한을 다치지 않기 위해’ 통성명도 없이 남처럼 헤어집니다. 그것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마음이 먹먹하면서 뭔가 용서받고 용서해야 할 것 같고.

 

 


서편제의 성공 이후, 이 기묘한 가족에 대해 이런 저런 이바구들이 뒤따랐습니다. 동호와 송화의 관계가 과연 남매간의 정 뿐이겠느냐, 유봉과 송화 사이에 어떤 프로이트적인 기제가 있는 거 아닐까.. 가장 황당한 이야기 중에는 “아비가 딸의 눈을 일부러 멀게 한다는 것은 한국 전통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서편제는 사실은 포스트모더니즘 영화다”라는 이 모 교수의 기괴한 논리도 있었습니다...숨을 거두는 유봉이 송화에게 사죄하고 송화가 이를 용서하는 장면에서 부녀간의 에로틱한 섬씽을 읽어내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의문들을 받아들이면서 영화 ‘천년학’은 서편제의 줄거리를 다시 씁니다. 무자비한 개발, 군부독재와 중동인력수출 등 한국사회의 시대적 환경의 변화를 훨씬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유봉이 과연 송화의 눈을 멀게 하였느냐? 그 이유가 과연 예술적 성취를 위한 것이냐? 송화를 키워 색시삼으려는 것이었는가? 아니면 그저 외로워서? 이러한 질문이 동호의 입을 빌어 제기되는데 혁필 화가의 차가운 핀잔을 받을 뿐이네요. 반면 송화에 대한 동호의, 남자로서의 애정은 보다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그것은 송화를 연모했던 용택의 시선을 통하여 더욱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천년학, 2007


 

조재현씨의 동호는 김규철씨의 동호와는 다소 다릅니다. 조재현씨의 동호가 보다 성인에 가깝습니다. 김규철씨의 동호가 어른이 되어서도 어딘지 어수룩해 보이는 데 비해, 조재현씨의 동호는 말끔하고 차갑습니다. 김규철씨의 동호가 오직 어릴 적 욱하는 성미로 저지른 실수를 되돌리기 위하여 평생을 헤매는데 비해, 조재현씨의 동호는 사랑하는 여인을 찾기 위하여 방황하고, 갈등의 상황 속에서 폭력적인 선택을 할 줄도 알고, 몇 년 동안 얽힌 부인과의 갈등을 따스한 손길 한 번으로 풀어 주기도 합니다. 송화와도 여러 번 만납니다. 동호의 삶에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은 이 영화가 동호의 입을 빌어 다시 한 번 이야기를 정리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영화의 얼개부터가 그렇습니다. 영화 ‘천년학’은 동호가 어린 시절의 연적이었던 용택의 주막에 들러 용택과 밤새워 술을 마시며 지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이(플래시백을 통하여) 전부인 구조입니다. 한국 현대사가 제공하는 환경 변화가 강조되는 것도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서편제’는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그리고 ‘천년학’은 ‘서편제’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서편제’에서 갈등의 핵이었던 김명곤씨의 유봉에 비하여, 실제 소리꾼인 임진택씨의 유봉은 희미합니다. 아무래도 연기가 어색합니다. 김명곤씨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고함을 지르고 욕을 퍼부어 보는 사람까지 깜짝깜짝 놀라게 할 장면에서, 임진택씨는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시지만 눈빛이나 표정의 변화가 없다보니 치고 박고 구르고 해도 영 정서적인 임팩트가 오지 않습니다. 김명곤-김규철 콤비에 비하여 임진택-조재현 콤비의 갈등은 소박해 보일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갈등구조가 전편을그대로 답습할 필요는 없겠지요.

임진택씨 뿐 아니라, 여러 예능인들이 참가하여 다양한 소리를 들려준 것은 ‘천년학’의 장점이겠습니다. 특히 서편제가 아닌 ‘동편제’에 해당하는 적벽가의 명창께서 김명곤씨에 뒤지지 않는 카리스마 연기를 구사하시고, 동편제 특유의 호쾌하고 남성적 기백이 넘치는 판소리를 보여주어 아주 즐거웠습니다.

송화가 이청준씨의 원작소설에 그려진 스산한 하류생활을 영위하는 모습도 나옵니다. ‘천년학’에서 그려지는 동호와 송화는 ‘서편제’보다 원작에 더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것도 ‘천년학’은 ‘서편제’를 설명하는 영화라는 심증을 굳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천년학과 서편제를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무리입니다. 서편제가 나오기 전, 한국영화는 악극과 창극, 판소리 같은 문화형식들을 다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일부 사회참여의식을 갖춘 영화들도 있지만, 많은 것들은 섹스와 폭력이 유일한 코드인양 굴었습니다. 서편제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 영화계에 벼락처럼 떨어진 축복”이라고 해도 될 영화였습니다. 천년학이 서편제만큼 흥행을 하지 못하였다고 해서 영화와 관객의 수준을 운운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년학은 서편제를 위한 영화이고, 임권택 감독님을 위한 영화입니다. 아울러 그 세대들이 살아온 세월들에 바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그런 영화로서의 가치가 있습니다.

게다가 그 시절의 환경을 천연덕스럽게도 고스란히 되살려내어, 보고 있노라면 정말로 그 세상을 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뭐.. 많은 분들이 고개를 저을 만한, 그놈의 ‘아저씨 냄새’가 영화 전체에 풀풀 나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역사이지요.. 아니, 영화 자체가 아저씨 둘이 술집에서 밤새 술마시면서 옛 이야기 하며 묻고 설명하고 다투고 하는 건데 막걸리냄새, 담배냄새, 유치한 집착과 우악스러운 패악질로 가득찬 걸 어떡하겠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정치적으로 척박하였던 7,80년대가 오히려 문학적으로 더욱 풍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김소월님의 끈적끈적한 정서를 다른 모습으로 고스란히 담아내는 이청준씨가 있었고, 이문열이 아직 이상해지기 전이었고(^^), 김홍신씨의 인간시장 시리즈, 최인호씨의 로맨틱한 소설들이 있었고, 이외수씨도 잘 벼린 칼날처럼 날카롭고 투명했었습니다. 그에 비해 요즘 소설들이 오히려 얇게 느껴집니다만, 문학도 오래된 절집처럼 세월의 손때가 묻어야 제 멋이 우러나오는 것이려니 싶네요.

서편제와 천년학을 합쳐서, 그리고 이청준씨의 원작 소설까지 합쳐서 이 스토리의 핵심은 명확합니다. 남도에 장님 소리꾼이 있었다. 아비가 득음을 시키려고 딸의 눈을 멀게 했다. 이 두 가지 팩트에서 인간과, 예술과, 집념과, 애정을 읽어내면 족하지 않을까요. 호수 위로 날개를 편 학 형상의 산자락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선학동 정경

 


PS 1. 영화를 보는 내내, 옆자리의 여고생들이 부스럭거리며 팝콘인지 콘칩인지를 씹으면서 자기들끼리 쑥덕거렸습니다. 덕분에 영화속 시장바닥의 잡다한 일상이 스크린 밖 관객석까지 소음과 향기(?)로 찾아오는 듯 하여 아주 실감나게 재미있는 감상을 할 수 있었습니다...

PS2. 영화를 보고 나오는 데 영화관 앞에 모시한복을 곱게 입은 할아버지 몇 분이 담소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문득 세상이 생각했던 것 만큼 빨리 변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S3. 다시 한 번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역시 소유보다는 존재입니다. 많은 재산을 갖더라도 미의식이 부족하면 그처럼 가난한 게 없겠네요. 그러나 그것도 ‘가득 차면 이지러진 것만 못하니’ 잔을 가득 채워 마시는 술은 술이 아니라 독이겠습니다.

출처 : 여명진료소
글쓴이 : 이상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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