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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구 서성로 돼지국밥집1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5. 07:19

대구 서성로 돼지국밥의 뿌리를 찾아서

 

서민들의 쓰린 속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해장으로, 주린 배를 든든하게 하는 한 끼 식사로 맛과 양, 가격에서 돼지국밥과 순대국밥만한 것이 없다.


돼지국밥은 이북음식이지만 한국전쟁 때 월남한 이북사람과 함께 정착돼 경상도의 고유음식이 되었다. 서울, 경기, 충청 등지에서는 순대국밥 집은 많지만 돼지국밥 집을 찾기란 여간 힘들지가 않다. 그러나 밀양, 부산,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 지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돼지국밥 집이다.


大邱 음식하면 누가 뭐래도 국밥(湯飯 탕반)이다. 대구의 국밥 문화를 주도하는 중앙로의 육개장과 따로국밥, 앞산 선지국밥, 서성로와 남문시장의 돼지국밥, 현풍의 곰탕을 비롯해, 대구탕과 추어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밥들이 하나같이 수준급이다. 

대구의 국밥문화가 이처럼 확실하게 맥을 이루게 된 바탕은 특별히 잘하는 음식점 한두 곳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저변에 깔린 평균적인 지역민들의 입맛과 가정집에서의 요리솜씨를 반영한 것이다.

또 미리 준비된 몇 가지 반찬, 끓여놓은 국에 밥 한 덩이 말아내는 패스트푸드인 국밥의 인기는 대구와 경북 사람들의 소탈하면서도 급하고 화끈한 성격과, 여름은 무덥고 겨울은 호되게 추운 날씨 탓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돼지국밥은 뼈에 살이 통통하게 붙은 돼지고기를 넣고 국물을 푹 우려낸 다음 수육을 건져내 큼직하게 썰어 넣고 파나 부추로 향을 낸 시원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는 음식이다.

대구의 돼지국밥을 대표하는 서성로 돼지골목은 6·25 직후부터 형성돼 밀양, 부산과 함께 전국 3대 돼지골목 중의 한 곳이다.

한국전쟁으로 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각종 부산물과 재료들로 서성로와 북성로는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이와 함께 돼지고기식당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구에서 돼지고기 요리를 제대로 했던 곳은 서성로밖에 없었다. 서울에서 동산동 실가게, 서문시장 등에 볼 일이 있어 대구역에 내린 외지인들이 어느 식당에 갈 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으면 역전에 대기 중인 택시 기사들은 홍보맨을 자청해 이들을 서성로로 데려갔다. 같이 간 택시기사들도 이곳에서 점심, 저녁을 해결했다. 80년대만 해도 하루 300대 이상의 영업용 차량이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처음엔 그것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는데 나중엔 그게 주차난을 가중시킨 것이다.


이러한 주차난과 삼겹살과 돼지갈비 구이 붐 탓에 서성로 돼지골목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 가고 있다. 하지만 '추억의 힘'이란 게 있다. 구수한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거기에 수육이라도 한 접시 더하면 진수성찬...

인근 인교동 공구상가에 망치든 노동자와 서문시장에 먼 길을 달려온 장사꾼들에게 큰 위안이 된 추억의 장소이다.  


서성로 돼지고기집은 50∼60년대 1기 식당, 70년대초 생겨난 2기 식당으로 나눠진다. 1기의 서성식당(주인 정순연)이 효시였고 그 다음 순천, 수성, 김천, 대구 식당이 '한 지붕 다섯 식당' 시대를 연다. 이들 식당이 서성로 돼지골목의 역사를 만든 주역들이다. 대구식당은 1962년 밀양식당으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골목 초입을 지키고 있고, 나머지는 모두 문을

닫고 2기 식당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지금은 밀양식당(우태월), 8번식당(김희자), 이모식당(박영자) 등 3개만 남아있다.

아직까지 3곳이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는 재료가 뛰어나서 인 것 같다. 가장 중요한 돼지고기는 수퇘지보다 암퇘지가 더 부드럽다. 누린내도 암퇘지가 수퇘지보다 더 적게 풍긴다. 그래서 역사 깊은 서성로 돼지국밥집은 수퇘지보다 몇 만원 비싼 암퇘지를 선호한다. 이익이 적게 남아도 그게 성공의 비결인 듯하다.


8번 식당

8번식당은 1976년 문을 열었다. 돼지골목에 들어가면 커다란 간판과 이색적인 이름에 금방 눈에 띈다. 돼지골목에서 규모나 고객 수에서도 으뜸가는 식당으로 성장했다.

이런 성공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있다. 전두환은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뒤 고향인 합천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문제는 돼지 수육을 어디에 맡길 것인가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성묘와 마을 어른 대접 때 필요한 돼지 수육을 아무데서나 구입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속내를 간파한 참모들이 전면에 나섰다. 어느 날 근처 미림찻집에 군 관계자 3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전국에서 수육을 가장 잘 하는 곳 중에 한 곳이 서성로란 정보를 입수하고 현장 조사차 대구로 내려온다. 식당 주인의 관상을 본 결과 8번식당 여주인이 둥글둥글하게 생겨 미더웠던지 약 300인분의 고기를 주문했다. 김희자씨는 이 사실을 보안에 부치고 돼지 3마리를 잡았다. 밤새워 고길 장만해두자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새벽에 감쪽같이 실어 가버렸다. 훗날 현장답사 나온 장교 한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각하가 고기 맛이 좋다고 칭찬했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고마워했다.

이 소문이 영업용 택시 운전기사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8번식당은 대통령이 미는 식당으로 자릴 잡는다. 그뿐만 아니라 김복동 전 국회의원의 모친(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모)이 타계했을 때도 8번식당은 경북대 영안실로 고기를 보냈다. 전 국회의원 강신성일(영화배우 신성일)씨도 8번식당 단골이었는데, 공교롭게도 김복동의원의 초상과 같은 날 모친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8번식당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장례식장도 똑같이 경북대학병원 영안실이었다. 이때가 경북대학병원이 생긴 이래 가장 복잡한 날이었다고 한다. 병원에 치료 받으러 온 환자들은 주차난으로 고생을 했음은 물론이다.

 


요즘도 가끔 수육 주문이 들어오지만 70년대만 해도 상가, 잔칫집, 회사 회식 및 야유회용 수육 주문이 쇄도했다. 그 시절 수육은 요즘 김밥과 맞먹었다. 설과 추석 전후, 노동절 전후에도 주문이 밀렸다. 웃돈을 주지 않으면 좋은 고기를 확보하지도 못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그날 잡은 걸 그날 처분해야만 품질을 챙길 수 있었다.


이곳은 연중무휴로 오전 8시에서 오후 10시까지 영업하며 돼지, 순대국밥은 4,500원, 고기는 한 접시에 10,000~15,000원이다. 원하는 여러 가지 부위를 썩어도 준다. 고기를 시키면 대갈비를 몇 대 넣어주는 것이 특징이다. 식당 문을 열면 큰 소리로 인사하는 주인의 붙임성과 밝은 인상이 손님들을 편안하게하고 끊임없이 부족한 것을 물어보고 챙겨주는 뛰어난 서비스정신도 성공의 비결이다. 전화번호:053)255-0167

 

 

 

 

 

 

 

 

 

이모식당

1970년에 박영자씨가 개업한 곳으로 올해 37년째를 맞이하고 바로 앞에 있는 8번식당과 쌍벽을 이루지만 6년 정도 먼저 문을 연 식당이다. 막창에 소를 넣은 전통 순대수육이 일품이고 고깃국에 돼지 특유의 냄새가 없어 시원한 것이 특징이다. 

별미인 순대는 20여 가지 야채와 고기, 돼지 막창을 이용하여 직접 만들어 낸다. 국밥을 비롯한 순대와 돼지수육의 가격은 8번식당과 같다. 원하면 썩어서도 준다.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돼지국밥에 흔히 사용하는 고춧가루 양념장 대신에 고추기름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깔끔한 맛이 돋보이는 점이다. 전화번호;053)255-6971 

 

 

 

 

 

 

 

 

 

 

출처 : 이 땅에서...
글쓴이 : 초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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