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진리생명빛

[스크랩]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5. 21:29

영지주의란 무엇인가?

 

 

1.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인간론

2. 영지주의와 불교 철학사상

3. 철학으로부터 종교로 유입된 영지주의 사상

4.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

5. 몸의 부활이 필요한 까닭

6. 영지주의가 하나님의 교회들에 끼친 해악

 

 

 

 

 

 

 

1. 고대 그리스 철학의 인간론

 

 

우리는 백 여년 전 처음으로 서구 세계와 접촉한 후 부터 줄곧 서유럽 문화권의 영향을 은연 중에 교육받고 자랐습니다.

크게 구분하면,

서유럽문화권은 헬라사상과 유대사상으로 나눌 수 있겠습니다.

특히 고대 헬라철학사상의 영향이 지극히 커서 성경말씀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영육이원론입니다.

 

 

1-1. 이원론

 

고대 그리스 철학이 말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의 특징은 이른바 영육이원론입니다.

즉 인간은 육의 껍데기를 입고있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영()이 불멸의 본질이고 진수인 이데아 이며 육신은 곧 썩어없어질 껍데기일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상입니다.

그들은 사람을몸을 기본으로 해 몸과 결합된 생명력을 지닌 존재로 인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으면 몸으로부터 분리된 (몸 속의영이 자유롭게 허공을 떠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편 어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사람이 영과 육과 혼으로 구성돼있고 

영은 정신 또는 의지력으로

혼은 혼백처럼 또는 앞서 말한 영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도

()의 존재를 믿었고 천국과 지옥의 존재도 믿었습니다.

다만 사람이 죽으면 (곧 영과 육은 죽지만혼은 계속 살아서 천국이나 지옥으로 바로 가거나 잠시 동안 영계를 떠돈다고 잘못 생각해왔습니다.

 

 

 

 

1-2. 영의 세계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지고지순한 지존자께서는 워낙 거룩한 존재이기 때문에 타락한 세속에 관심을 가질 수도 없고 아예 관심도 없으실 것이라는 전제 아래,

자기 보다 품격이 조금 떨어지는 신을 창조해 지존자와 세상을 이어주는 한 급 낮은 이 신에게 세상일에 대신 관여토록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즉 고대 그리스 철학으로부터 종교로 유입된 영지주의 사상은 참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을 창조주 하나님의 일종의 아바타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서로 동격이신 세 분으로 계신오직 하나이신 하나님으로 계십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와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과및 성령하나님께서 (서로 독립된 신격이시지만 동일한 한마음 한 뜻을 가진 사귐의삼위일체로 계십니다.

 

여기서

오직 하나라는 말의 뜻은 그 위격에서 하나님 외에 그 분께 견줄만한 다른 이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하늘들을 창조한 {}가 이같이 말하노라. [하나님]은 친히 땅을 조성하고 만들며 견고하게 하였으되 땅을 헛되이 창조하지 아니하고 사람이 거주하도록 조성하였느니라나는 {}니라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이사야 45:18)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고후4:4)

 

 

여기서 세상의 신은 타락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스스로 계신 완전한 존재는 오직 하나일뿐일 것입니다.

만약 두 셋이 모여야만 완전한 존재가 된다면 논리적으로 각각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 분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동등한 분들이실 것입니다.

 

오 이스라엘아들으라. {우리 [하나님]은 한 {}시니 (6:4)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또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 (4:6)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2:5)

 

 

다음으로

하나의 뜻은 서로 사랑함으로써 한마음 한 뜻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11...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지키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22… 이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 이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나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 안에서 완전해지게 하려 함이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니이다.

26. …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 (요한복음 17:11, 22-23,26) 

하늘에 증언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님이시라또 이 세 분은 하나이시니라. (요일5:7)

10. 내가 [아버지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들은 내가 스스로 하지 아니하느니라오직 내 안에 거하시는 [아버지곧 그분께서 그 일들을 행하시느니라. (14:10)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하시니라. (10:30)

 

 

기본적으로

영의 세계의 신비는 우리가 알려고 노력한다고해서 잘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신비는 계시해주신 성경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신 그만큼만우리가 엿볼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외 다른 방법으로 이 신비를 바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1-3. 영지주의 또는 그노시스트 학파

 

 

그러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영지주의 또는 그노시스트 학파및 아그노시스트 학파는 각각

(영지주의자 또는 그노시스트 학파는영의 세계의 신비를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아그노시스트 학파 또는 불가지론자는전혀 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둘 다 틀렸습니다.

 

먼저 우리는 영적존재가 아니라 몸을 입고 물질세계를 사는 존재이므로 영지주의 또는 그노시스트 학파의 주장과는 달리 영의 세계의 신비를 잘 알 수 없습니다.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신비를 계시해주신 성경말씀을 통해서 (보여주신 만큼만우리가 엿볼 수 있으므로 불가지론자의 주장과는 달리 전혀 알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영지주의 또는 그노시스트 학파는 어떻게 영의 세계의 신비를 잘 알 수 있도록 접근할 수 있다는 걸까요?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영지주의 학파는 두 갈래입니다.

즉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는 에피쿠루스 학파와 금욕주의적인 스토아 학파가 그들입니다.

그들은 영육이원론을 바탕으로 인간을 이해하려는 철학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쾌락주의자들인 에피쿠루스 학파는 비록 인간이 육체를 입고있는 한 절대로 영의 세계를 알 수 없지만 육의 감각들인 오감에 의지해 어느 정도 간접적으로 영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육신을 입고있는 동안 사람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도 나름대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가능한 한 최대의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것이 사람의 목표이자 운명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시말해 그들은 궁극적으로 영혼을 속박하는 몸을 벗어나 내 영혼이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 

먼저 몸을 속박하는 것들즉 율법이나 양심 또는 윤리를 거부하고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마음껏 하기위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저지르기 전후에 양심에 꺼리거나 죄의식 때문에 괴로워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즉 욕망을 합리화 합니다.

 

심지어 그들은 힌두교나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 사상의 개념을 가지고 사람으로 나서 방종한 삶을 사는 것을 짧은 기간동안 누리는 신의 축복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두개파 유대인들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몸의 부활을 믿지 않았고 영의 세계와 천사들의 존재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주 멀리계신) 신께서는 단지 우리 세상을 창조하시고 각 사람의 운명을 계획하신 후 전혀 관여치 않고 (새장 안에 갇힌 새마냥 일종의 매트릭스 안에 가둔 채) 내버려두셨다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당대 대다수 이방인들도 이런 (매우 세속적인) 사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반면,

금욕주의자들인 스토아 학파는 오직 육신은 영적 체험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생각해 스스로 육체의 욕망을 극도로 억제하므로써 자기 속에 갇힌 영()성을 훈련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영적해방 또는 해탈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파 유대인들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몸의 부활과 영의 세계와 천사들의 존재를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의 은혜를 오직 믿음으로 영적 신비의 체험에 이르려하기 보다는 자기들이 스스로 절제하고 금욕 생활을 추구함으로써 이르려고 하였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은 메시야가 오시기를 기다리지 않았고 메시야께서 오셔서 자기들을 구원토록 기다릴 필요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이 이미 그들 손에 있으므로 신의 (옛)언약을 따라 살면 제 힘으로 구원을 반드시 이룰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영육이원론에 바탕한 고대 그리스 철학들은 (마치 불교처럼 또는 현대의 뉴에이지 사상처럼 육체를 지나치게 긍정하든 부정하든몸 속에 갇힌 영혼의 자유를 추구하는 사상으로 발전해오고 있습니다.

 

 

 

2. 영지주의와 불교 철학사상

 

 

불교에서는 창시자인 석가모니 세존께서 오랜 금욕적인 수련 끝에 마침내 득도해 성불하셨기 때문에 사바(또는 사파)세계의 모든 인간들도 자기 본성에 내재한 불성을 깨워 불러일으켜 성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부처란 애초부터 인간과 분리된 신과 같은 거룩한 존재라기보다는 각고 끝에 보통 인간들과 같은 연속선 상에 놓여있었지만 드디어 맨꼭대기에 자리잡은 크게 깨친 자에 더 가깝습니다.

다시말해 어떤 사람도 부처가 될 수 있는아니 부처조차 뛰어넘을 수 있는 자질을 그 속에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

 

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먼저 어떤 정해진 기준이 있어 반드시 거기에 따라야한다는 고정관념, 또는 부처는 처음부터 지고지순한 존재라는 선입견 및 편견을 버리라는 뜻이지만

어쩌면 이 또한 자기가 극복해야할 대상이므로 강을 건넌 후 뗏목을 버려두고 미련없이 떠나듯 쓰고나서 곧 버리는 하나의 방편으로서만 의미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만 난마같이 종잡을 수 없는 내 마음이 (성불하는데 걸림돌이 되는문제일 뿐입니다.

그러나 온 우주가 오로지 (변화무쌍한내 마음에서 지어낸 조화(허상)임을 깨닫고 이제부터 (바깥으로만 향하던 내 마음의 눈을돌이켜 내 속 중심의 마음을 똑바로 들여다보고 이왕의 깨달음을 통해 바로잡으면 이 허상의 세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 (시작이자 끝입니다아니 마음이 전부입니다.)

 

내 마음 (속 불성)이 본래진면목이고반면 온 우주는 (내 마음이 지어낸허상(의 세계)일뿐이라는 이런 불교의 가르침은 영화 [매트릭스]의 세계와도 비슷합니다.

 

다시 말해,

현세에서 몸은 단지 내 영혼이 잠시 빌려입은 것일뿐이므로 마음으로 깨친 득도를 통해 내 영혼이 윤회의 굴레로부터 해방(해탈)되고나면 몸을 비롯한 물질세계의 모든 고통들로부터 자연히 탈각하여 (누에고치로부터 나비가 돼 찬연히 날아오르듯 껍질을 벗고지고지순한 영적 세계(정토 또는 극락세계)로 진입하는 것 (또는 열반에 드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념은 실제를 벗어나 (강조하느라 지나치게과장됐으므로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은 단지 주관 세계일뿐이고 내 마음 밖에 엄연한 객관 세계가 (당당히펼쳐져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마음 속의 세계도 바깥의 객관 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므로 내 마음 속에도 온 우주가 이미 들어와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너와 내가 대화할 수 있으며 우리가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네 마음과 내 마음의 세계가 하나인 이 객관 세계를 반영치 않고 각자 독립된 자기 세계 안에만 갇혀있을 뿐이라면 어떻게 공통의 주제를 놓고 서로 열린 대화를 나눌 수 있겠으며 심지어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마치 각자 딴 데 보며 딴 얘기를 하는 것과도 같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즉 내 마음 속에도 온 우주가 이미 들어와 있다고 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 존재유무와 상관없이 내 마음 밖에 엄연히 공고한 객관 세계가 펼쳐져있고 내 마음의 세계도 이 객관 세계를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주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불변한 어떤 존재를 기준으로 (나를 포함한) 온 우주가 그 축 주변을 맴돌고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추리면

내 마음의 세계도 이 객관 세계를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으므로 우리 마음이 여전히 귀중합니다즉 (불가에서 말한대로내 마음이 곧 우주 그 자체와도 같습니다.

 

다만

천상천하에 오로지 나만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비록 온 우주일지라도 (나를 포함하여)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므로 내 마음이 모든 것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것의 진짜 기준이 되시는 진리이자 법칙이며 중심축인 영원불변한 지존자를 대신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내 마음이 더 커지고 깨끗해져서 이 지존자를 온전히 반영할 수 있어야합니다.

즉 내가 지존자의 성품을 닮아야겠습니다.

내가 지존자의 영광을 눈부시게 반사해야겠습니다.

나를 통해 지존자의 거룩한 성품을 가늠해볼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는 이 지존자가 누구신지 알아야겠습니다.

그러나 이는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알 수 없으므로 반드시 지존자가 내비치는 영광(의 은혜)인 계시의 말씀과 그 분께서 보내신 (눈에 보이지 않는 신령한존재의 도움을 받아야만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여,

불가에서

학승이 선사에게

 

참 사람 또는 진인이 누구신가?’

 

하고 물으면

갑자기 벼락같이 소리를 내지르며 손에 쥐고있던 지팡이로 그 학승의 머리를 내려치든가 아니면 멱살을 거머쥐고 큰 소리로 외쳐,

 

어디 내게 말해보아라이 진인이 누구인지를’.

 

하고 되묻곤 합니다.

이때 만약 학승이 어리둥절하여 대답하지 못하면 혼잣말처럼

 

이 진인은 똥막대기 로군’.

 

하고 중얼거리곤 합니다.

 

이 질문의 정답은

모든 사람이 다 가능성으로서는 분명히 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진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내가 바로 그 진인 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선사께서는 친절하게 차근차근 설명해주시지 않고 갑자기 벼락같이 소리를 내지르며 쥐고있던 지팡이로 학승의 머리를 내려치든가 아니면 멱살을 거머쥐고 큰 소리로 외쳐 되묻는가 하면 학승이 문득 깊이 깨닫도록 하려는 나름대로 유서깊은 방편이라고 생각한 때문입니다.

 

즉 방할이라고 하는 방법인데

지혜에 근기가 있는 학승이라면 그 순간 바로 깨닫고 득도의 경지에 이르기 쉽기 때문이랍니다.

 

한편

 

개에게도 불성이 있을까요?’

 

석가모니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조사라고도 부르는 선사들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잘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가능성으로서는 여전히 개도 불성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실제로는 불성을 계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개과천선을 하든지 개가 참선을 할 가능성은 아예 없겠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석가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말했을까요?

 

선사들의 해설에 따르면석가가

보채고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해 고무젖꼭지를 물리거나 사탕을 주는 행위와 같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다시말해

뭇 사람들의 생각이 윤회라는 틀 속에 갇히다보면

(전생에 개였다가 현세에 사람으로 환생하거나 사람이 죽어 내생에 개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으므로)

사람이든 개든 그 속성에서 큰 차이가 없을 것이므로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일 뿐일 것이므로사람이 가진 불성을 개라고 해서 갖지 못할 까닭이 없지 않겠나 하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추론에 따라 이런 질문들을 하는 줄 잘 알므로 기본적으로 (가능성으로는모두에게 있다고 답했던 것이지만,

 

아다시피

정작 각자가 처한 삶의 환경이 서로 다 다르므로 개가 제 본능을 제어해가며 불성을 계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에 실제로는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근기가 없는 뭇 사람들이 저자거리(시장바닥)와도 같은 삶의 온갖 집착들을 끊고 성불할 가능성도 매우 적다고 말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3. 철학으로부터 종교로 유입된 영지주의 사상

 

 

초대교회에 들어온 영지주의 신학사상은 원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의 그노시스트 학파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철학사상이 뭐라 말하든 큰 문제가 없겠지만 신학에 까지 들어온 잘못된 관념들은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참 사람으로 오신 것을 믿지 않는 심각한 이단교리로 커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고대 그리스 철학이 말하는 영육이원론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둘째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째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잘못된 결론 때문입니다.

 

 

속이는 자들이 세상에 많이 들어왔는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 안에 오신 것을 시인하지 아니하느니라이런 자가 속이는 자요 적그리스도니라.” (요이1:7)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비록 내 마음이 곧 우주(를 반영하므로일지라도 결코 온 우주가 영원불변한 지존자를 대신할 수 없으므로 내 스스로 지존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비록 가능성만일지라도 내 속에 있는 불성만으로 결코 그리 될 수 없습니다.

 

 

4. 성경이 말하는 인간론

 

 

성경이 말씀하는 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이 말하는 사람과는 전혀 다릅니다.

 

인간은 흙으로 만든 육체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살아있는 존재로 만든 것입니다.

이때 살아있는 존재를 이라고 부릅니다.

물론 이 혼은 하나님과 그 분의 천사들과 같은 이 아닙니다.

혼은 살아있는 인격체로서의 사람 그 자체를 가리킵니다.

즉 사람은 영과 육으로 된 살아있는 혼입니다.

 

영어 단어대로 표현하면,

사람의 영은 스피릿 (Spirit)이고천사들의 영은 고스트 (Ghost) 입니다.

 

천사들의 영은 (하나님처럼영계에 존재하는 독립된 개체들이고

사람의 영은 (동물들처럼몸과 결합된 생명력 또는 정신력입니다.

 

그러므로

몸을 떠난 (사람의영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만든몸은 썩어 땅으로 돌아가고

사람의 영은 하나님께서 몸에 불어넣은 호흡(또는 생명력이므로

몸과 분리된 영은 (동물들의 영처럼곧 땅으로 사라지거나 (사람의 영처럼하늘로 올라가 심판날까지 하나님께서 간직하고 계십니다.

 

혹 둘을 합쳐 영혼이라고 부르는 경우,

이 둘이 비록 엄연히 서로 다른 것이지만 (사람을 포함한살아있는 동물들과 영적 존재들을 서로 대비하여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람을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는이 생명력을 (그 사람의영이라고 부르는 것일뿐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사람은 (천사들의 영같은 그런영을 가진 존재가 아닙니다.

 

 

다시말해

산 사람은 (영과 육이 결합된그냥 혼이라고 불러야합니다.

왜냐하면 혼은 단지 살아있는 사람과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그냥 사람의 영이라고 불러야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영은 단지 생명력 또는 정신력과 같은 뜻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흔히 혼백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죽은 사람의 몸에서 떠나 허공을 떠도는 영적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이런 혼백이란 개념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처럼잘못된 생각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땅으로 돌아가 죽은 채로 땅 속에 있을 뿐이고 그의 호흡은 생명력을 주신 신에게로 되돌아가기 때문입니다.

 

반면

죽은 사람의 몸에서 떠나 허공을 떠도는 영적 존재인 것처럼 생각되는 존재들은 애초부터 없었고 오직 미혹케하는 악한 영들이 있어서 (악한 목적을 따라다른 사람들에게 영의 세계에 대한 잘못된 관념들을 심어주기 위해 조작한 것들뿐입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처음부터 영계에서만 존재하는 독립된 개체들입니다.

 

이 점을 혼동하면 (현대 철학사조 중 하나인뉴에이지 사상에 쉽게 미혹당하게 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의 호흡이 떠나가면 그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바로 그 날에 그의 생각들이 사라지는도다.’ (시편 146:4)

 

이미 죽은 사람들은뇌 속의 의식도 사라지고 몸은 여전히 무덤속에서 잠자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물러가라이 소녀는 죽지 않았고 잔다하시니 그들이 그분을 비웃더라.’ (9:24,5:39,8:52)

‘… 그분께서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그러나 내가 그를 잠에서 깨우러 가노라, …’ ‘이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하게 이르시되나사로가 죽었느니라.’ ( 11 : 11, 14)

 

그렇다면

죽어서 무덤 속에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걸까요?

 

 

심판날에 있게 될 부활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51. 보라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반드시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그리하여 그때에는 기록된바사망이 승리 가운데서 삼켜지리라하신 말씀이 성취되리라. (고린도전서 16:51-54)

 

 

이미 죽은 사람들은 지금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답니다.

그리고 심판날에 살아있는 몸으로 부활하여 영생하는 영광스런 몸으로 변화된답니다.

 

이는 영혼의 부활을 말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몸의 부활을 말합니다.

 

 

 

덧붙여,

그렇다면 사람이 짐승보다 나은 점이 있을까요?

 

 

18. 내가 내 마음속으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상태에 대하여 이르기를,

[하나님]께서 그들을 드러내시리니 이것은 자기들이 짐승임을 그들이 보게 하려 하심이라, ...

19. 사람들의 아들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짐승들에게도 일어나나니 곧 한 가지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느니라.

이것이 죽는 것 같이 저것도 죽나니 참으로 그들이 다 한 호흡을 가졌도다.

그러므로 사람이 짐승보다 뛰어날 것이 없나니

이는 모든 것이 헛된 것이기 때문이로다.

20. 모두가 한 곳으로 가나니 모두가 흙에서 나와 모두가 다시 흙으로 돌아가거니와’ (전도서 3:18-20)

 

 

전도서의 말씀에서와 같이 (따지고 보면사람일지라도 짐승보다 더 뛰어날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큰 차이가 하나 있다면

사람의 영은 죽은 후 하늘로 올라간다는 점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직접 호흡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하나님께서 그 숨을 거두시고 심판 날까지 간직하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짐승이 죽으면 땅으로 내려가 곧 소멸됩니다.

 

21.누가 위로 올라가는 사람의 영과 땅으로 내려가는 짐승의 영을 아느냐? (이어진 21)

 

 

다음으로,

짐승에게도 영이 있을까요?

 

 

짐승에게도 (짐승의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 말하는 영은 죽은 몸에서 떠나 자유롭게 떠도는 그런 영이나 혼백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영과 마찬가지로생명력 그 자체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이 죽으면 몸도 영도 다 소멸되고 맙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이나 천사들과 같은 그런 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짐승에게 지능이 있을까요?

 

 

당연히 짐승에게도 지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과 지능은 다른 것입니다.

 

 

27. 나귀가 {}의 천사를 보고 발람의 밑에 엎드리니 발람이 분노하여 자기 지팡이로 나귀를 때리더라.

28. {}께서 나귀의 입을 여시니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내가 주인에게 무슨 일을 하였기에 주인이 나를 이같이 세 번이나 때리시나이까? …

29. 이 나귀에게 이르되네가 나를 조롱하였기 때문이니 내 손에 칼이 있었더라면 이제 내가 너를 죽였으리라.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나는 주인의 소유가 된 이후로 이 날까지 주인께서 타시던 주인의 나귀가 아니니이까내가 지금까지 주인에게 이와 같이 행하는 버릇이 있었나이까? … 그가 이르되없었느니라, ...’ (민수기 22 27-30)

 

 

나귀가 사람에게 말하는 장면을 예로 들어 봅시다.

 

먼저 이 이야기에서 보면사람과 나귀가 대화를 합니다물론 이솝우화가 아닙니다.

나귀가 주의 천사를 알아본 다음주의 천사가 나귀의 입을 열자 나귀가 제 주인과 대화를 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대화능력이 어디로부터 나왔을까요?

 

 

이것이 나귀에게 어떤 영혼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요?

나귀가 어떤 고결한 영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비록 나귀가 영혼을 가지고 있다손치더라도나귀의 영혼이 언어능력까지 지녔을 거라고 추론할 수 있을까요?

성경말씀은 나귀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씀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입니다.)

 

분명 이것은 나귀에게도 (꽤 높은지능이 있다는 것만을 보여줍니다.

 

 

정서와 지적 능력과 의지력은 머리 속 뇌로부터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정서와 지적 능력과 의지력은 머리 속 뇌로부터 나옵니다.

우리 신체의 다른 무엇으로도 뇌를 대신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이 나귀가 사람과 대화한 내용을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 나귀가 사람에게 갖는 보통의 감정이 주의 천사의 능력을 통해 간단한 언어로 바뀐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즉 대화 내용이 나귀가 평소에 표현할 수 있을 만한 것과 사람 말로 알아들을 만한 것들뿐입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가 나귀에게 어떤 영혼이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말씀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하나님] []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 (4: 24)

 

 

하나님과 천사들의 영

 

 

여기서 말하는 영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말합니다.

생명의 호흡을 가진 사람이나 짐승의 영과는 전혀 다릅니다.

영적 존재들예를 들어 하나님의 천사들은 태초부터 영적 존재들이기 때문에 영적 존재 그대로 있지만사람이나 짐승은 처음부터 영적 존재들이 아니므로 영적 능력을 갖춘 영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천사들은 창조 전에 이미 있었답니다

 

 

4. 내가 땅의 기초들을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네게 명철이 있거든 밝히 고하라.

7. 어느 때에 새벽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모든 아들들이 기뻐 소리를 질렀느냐? (욥기 38장 4, 7)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은 (악한 영들까지 포함하여 천사인 채로천지창조 전부터 이미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의 영이 천사로 변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죽은 자들의 영은 천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인 천사들 중에는 후에 타락한 악한 천사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의 영이 곧 천사가 되는 줄로 착각하고 죽은 자의 영을 통해 영계와 접촉하려고 시도하면 이를 악용하려는 악한 영들의 속임수에 깜빡 속을 수도 있습니다.

 

 

5. 몸의 부활이 필요한 까닭

 

 

심판날에 살아있는 혼으로 부활 시키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부활과 심판 전에 먼저 천국이나 지옥에 갈 수 없습니다.

천국이나 지옥에는 아직 대부분 빈자리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릴 우리들은 부활 후 영화롭게 된 몸을 입은 상태로 있게 되고 결코 몸을 떠난 영적인 상태로 있게 되지 않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들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나니 (히브리서 9 : 27)

25. 내 구속자께서 살아 계시는 것을 내가 아노니 마지막 날에 그분께서 땅 위에 서시리라.

26. 내 살갗의 벌레들이 이 몸을 멸할지라도 내가 여전히 내 육체 안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19:25-26)

]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음성과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전서 4 : 16)

 

 

각각 자기 열매들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12. 또 내가 보매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할 것 없이 [하나님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져 있었으니 곧 생명책이라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들에 따라 책들 에 기록된 것들에 근거하여 심판을 받았더라. (열매에 따라)

13. 바다가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자기 속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매 그들이 각각 자기 행위들에 따라 심판을 받았고 (20:12-13)

 

 

 

다윗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29. 사람들아 형제들아내가 족장 다윗에 대하여 거리낌 없이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돌무덤은 이 날까지 우리와 함께 있도다.

34. 다윗은 하늘들로 올라가지 아니하였으나 … ( 2:29,34)

 

 

만약 사람이 죽는 순간에 영혼이 육체를 빠져 나와서 의인들은 하늘에 가고 악인들은 지옥에 간다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대언자나 의인들의 영혼은 지금쯤 하늘에 가있어야 하며악인들의 영혼은 벌써 지옥에 가있어야 합니다그러나 어째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 다윗이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라고 말하였을까요?

다윗이 죽고난 후 베드로 때까지 무려 천년의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왜 다윗은 아직 천국에 올라가는 축복을 누리지 못했을까요?

 

 

이 사람들은 다 믿음 안에서 죽었으며 약속하신 것들을 받지 못하였으되 멀리서 그것들을 보고 확신하며 받아들였고 또 땅에서는 자기들이 나그네요 순례자라고 고백하였으니 (히브리서 11:13)

 

바울도 믿음의 조상들이 죽은 후 아직도 천국에 가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으리라, …’

사람의 [아들]이 자기 [아버지]의 영광 중에 자기 천사들과 함께 올 것이요그때에 그가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누가복음 14:14, 마태복음 16:27)

보라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요한계시록 22:12)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길,

부활 때까지 아무도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는 천국이나 지옥에 미리 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의 영이 떠돌아다닐 수 있나요?

 

 

 

4. 살아 있는 모든 것에게 연합된 자에게 소망이 있나니 살아 있는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으니라.

5.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거니와 죽은 자들은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다시는 보상도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잊혔기 때문이로다.

6. 또한 그들의 사랑과 미움과 시기도 이제 사라졌나니 해 아래에서 이루어진 어떤 일 중에서 그들이 차지할 몫은 영원히 없느니라.

10. 무엇이든지 네 손이 해야 할 일을 얻는 대로 네 힘을 다해 그것을 하라네가 가게 될 무덤 속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느니라.’ (전도서 9 4-10)

 

그의 호흡이 떠나가면 그가 자기 땅으로 돌아가고 바로 그 날에 그의 생각들이 사라지는도다.

죽음 속에서는 주를 기억할 수 없사오니 누가 무덤 속에서 주께 감사하리이까?

내가 구덩이로 내려갈 때에 내 피에 무슨 유익이 있으리이까흙이 주를 찬양하겠나이까그것이 주의 진리를 밝히 드러내겠나이까?

죽은 자들은 {}를 찬양하지 못하며 적막한 곳으로 내려가는 자도 다 그러하도다.

(시편146:4, 6:5, 30:9, 115:17)

 

무덤이 주를 찬양하지 못하고 죽음이 주를 찬송하지 못하며 구덩이로 내려가는 자들이 주의 진리를 바라지 못하되

사람은 누우면 일어나지 못하고 하늘들이 더 이상 있지 아니할 때까지 그들이 잠에서 깨지 못하며 일어나지 못하리이다. (이사야 38:18, 욥기 14:12)

 

 

이 말씀들에서 보는 바와 같이죽은 사람의 영은 떠돌아다닐 수 없습니다그대로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죽음을 잠에다 비유하였을까요?

 

잠이 무의식의 세계로 빠지는 것과 같이 죽음도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에서 깨어나듯 심판날 죽음에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죽은 자들은 완전한 무의식의 세계 속에서 잠을 자다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종 선고를 듣기 위해 모두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부활 때 불멸의 몸을 선물로 받게 될 것

 

 

51. 보라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알리노니 우리가 다 잠자지 아니하고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날 때에 눈 깜짝할 사이에 순식간에 다 변화되리라.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라. (고린도전서 15:51-52)

 

그들이 수천년 전에 잠들었든지 재림 바로 전에 잠들었든지 간에자신에게는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순간까지 걸린 시간은 단 몇초도 안되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이때 의인들은 불멸의 몸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소멸될 것입니다.

 

 

 

6. 영지주의가 하나님의 교회들에 끼친 해악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은 먹지 말라.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는 날에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너희가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

 

 

본문 창세기 2장과 3장에 나온 말씀은 그대로 마지막 날의 영적 전쟁이 됐습니다.

우리 모두는한편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기로 선택하면 그 죄의 결과로 반드시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다른 한편에는 절대로 죽지 아니하리라는 사단의 거짓말 중에서

스스로 판단하여 자기 책임 아래 선택해야만 합니다.

 

첫번째 운명적 시험에서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갔고 그 결과 창세기 5장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모두 죽게 됐습니다.

사단의 장담과는 달리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불멸의 몸을 입었던 우리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결국 죽게 됐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비록 몸은 죽을지라도 우리 몸 안에 소멸치 않는 영혼이 있어 누구나 영원히 산다는 이른바 (고대 그리스 철학사상인영혼불멸의 가르침에 또 속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혼불멸의 사상은 오늘날 모든 종교인들에게 보편적인 신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거의 모든 기독교회들까지 영혼불멸과 환생이라는 가르침을 진리인양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덴동산에서 속삭였던 사단의 거짓말이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 온답시고 악한 영들을 불러오는 영매들이 교회 안에도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심판날이 아직 이르기도 전에 (꿈으로나마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이들을 데려다가 부흥집회를 열기도 합니다.

모든 것들은 세상 끝날에 믿는 우리들을 미혹케 하는 영들의 속임수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붙잡고 이들에게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 자신이 영원하고 불멸하신 것처럼인간의 영혼도 영원불멸하다는 영혼불멸 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 사상의것입니다.

 

나아가 ‘의인의 영혼은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악인의 영혼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는 영원지옥설을기독교회 안으로 끌어들인 것도 고대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학자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른바 알렉산드리아 학파라고 부릅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을 영원한 고통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소멸 입니다.

 

 

카톨릭 교회가 잘못된 교리의 기초를 놓은 것

 

 

연옥은 성경말씀에 없는 잘못된 개념

 

성경말씀이 그러한데도 카톨릭 교회는 개개인의 영혼의 운명이 죽자마자 결정되고 

또 성경말씀에는 없는 연옥이라는 곳에 가서 정결케 하는 속죄의 고통을 받는다고 가르침으로

연옥이라는 잘못된 개념을 기독교회 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원래 지옥은 사단과 그를 추종하는 악한 영들곧 마귀들을 영원한 지옥불로 소멸키 위해 마련한 곳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들을 벌 주려고 마련한 곳이 아닙니다.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저주를 받은 자들아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25:41)

 

호흡하는 육체를 가진 인간들은 천국행이냐 지옥불에 소멸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여있을 뿐입니다.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이방종교의 가르침이지 결코 성경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벌주시는 잔인한 분이신 걸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사상으로부터 신학에 들여온

영지주의는

영육이원론을 바탕으로

마치 병 속의 새를 꺼내는 것처럼

(껍데기일뿐인몸에 갇힌 (알맹이인영혼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해

 

에피쿠루스 학파처럼 병()을 최대한 크게 만들어 병 속의 새(영혼)를 충분히 활동적으로 만들든가

스토아 학파처럼 아예 병()을 깨뜨려 새(영혼)를 꺼내는 방법으로

(영혼)가 자유로와지면

(병 바깥에 펼쳐진영의 세계의 신비를 깨칠 수 있다는 사상입니다.

 

한편 신학에 적용된 영지주의 사상은

영의 세계의 신비인 창조주 신은 인간 세상과 완전히 분리돼 계시므로

자기보다 한 단계 격이 떨어지는 신인 구세주를 자신의 아바타로 만들어

인간 세상과의 접속수단으로 또는 메신저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이때 이 구세주가 인류를 영의 세계의 신비로 인도하기위해 또는 적어도 맛보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세주께서는 인류를 직접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라 모본으로 방법을 잘 보여줌으로써 각 사람이 그분을 따라 스스로 각성하고 훈련하여 영의 세계로 성공적으로 진입하도록 도와주려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한편의 감동적인 영화를 보여주신 것처럼 굳이 구세주께서 몸을 입은 채로 이 땅에 오실 필요까지 없었고 단지 그분의 제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누구를 통해서든 이런 방법으로 도움을 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현설)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사람의 영혼과 영의 세계의 존재들은 서로 같다는 전제 아래

만약 성공적으로 영의 세계에 진입하면 그 영혼은 곧 신과 같은 존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학에 적용된 영지주의는 불교철학과 매우 비슷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영지주의사상과 달리 성경말씀은

먼저 사람은 결코 몸과 분리될 수 없는 영을 가진 존재이므로 영육일체론을,

다음으로 예수님은 결코 창조주 신보다 한 단계 격이 떨어지는 메신저가 아니라 세 분으로 계신 한 하나님 중 한 분이시고,

마지막으로 사람의 영은 영의 세계에 사는 영적 존재들과 다르므로 몸을 벗어난 사람의 영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산 사람은 (결코 몸과 분리될 수 없으므로몸을 입은 채로 천국에서 살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나님의 교회들에도 영지주의 사상의 악한 영향들을 받아들여,

몸은 껍데기이고 아무 것도 아니며 몸 속의 영이 몸을 떠나 천국에나 연옥에 가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거나

(바울은 믿기 전 내 옛사람을 몸의 사람이라고 했고 믿은 후 신분이 변한 내 새사람을 이제 영의 사람이라고 말했을뿐입니다.)

또 성경에는 분명히 심판날 사람의 영 뿐만아니라 비록 영의 세계에 속한 천사들일지라도 타락한 영들조차 지옥불로 소멸하실 것을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윤회사상같이 몸은 죽어도 몸 속의 영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영혼불멸설을 퍼뜨리고,

이미 죽은 사람들은 지금 무덤 속에서 잠자며 심판날을 기다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자마자 천국에 가거나 지옥에 가서 고통받고 있는 줄 착각하여 아직 심판날이 이르기도 전에 (꿈으로나마천국과 지옥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부흥집회를 열기도 하고,

심지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온답시고 악한 영들을 불러오는 영매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영지주의는 나름대로 신학적 체계를 멋지게 세워보려던 한 무리 (알렉산드리아 학파)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만든 영지주의 사상들을 하나님의 교회 안으로까지 끌어들여 멋진 교리로 세워보려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열방에 전해야할 사명을 받은 우리 제자들은 세상의 원리들에 현혹되지말고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올바른 기준을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전해야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아이였을 때에는 세상의 초등 원리 밑에서 속박 당하였느니라.
그러나 이제 너희가 [하나님]을 안 뒤에 혹은 [하나님]께 알려진 뒤에 어찌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원리로 돌아가 다시 그것에 속박 당하려 하느냐? (갈라디아서 4 : 3, 9) 

어떤 사람이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하지 못하도록 조심하라그것들은 사람들의 전통과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을 따르는 것이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세상의 유치한 원리들로부터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늘 어찌하여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이 규례들에 복종하느냐? (골로새서 2 : 8, 20)


 

 

 

 


출처 : 성화구원
글쓴이 : 청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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