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추억여행

[스크랩] 주왕산 답사기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7. 15:33

 

주왕산에 대한 나의 동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주산지는 또 어떻고...

처녀 시절에 한 번 다녀 온 적이 있다는 아내는 내가 주왕산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 마다 피식

웃고는 한다.

 

나: 왜 웃어?

아내: 그냥.

나: 그냥?

아내: 응. 그냥. 어디서 좋다는 소리는 들어가지고...

나: 그러지 말고 우리 한 번 같이 가자.

 

그러던 중 갑자기 추진된 부부 여행 계획.

여행 일시: 2006. 7. 25. 화. - 7. 26. 수.

 

(장군봉과 기암의 모습)

 

아침에 눈을 뜨니 8시.

아뿔싸! 늦어도 너무 늦었다.

애들 방학하고 나서 온 식구가 늦잠꾸러기가 되어 버렸다.

투덜대며 짐을 꾸리는 나에게 아내가 한 마디 한다.

"코를 골며 너무 곤하게 자서 차마 깨우지 못했네요"

 

머리가 띵하다. 여행 전날에는 과음을 하면 안되는데...

어제 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한잔 하면서 여행 이야기가 나오고...

친구들의 부러움과 격려(?)속에 그만 기분이 업되어 쬐끔 자제력을 잃고 말았구나.

 

아내를 재촉하여 짐을 챙긴 뒤 서둘러 집을 나선다.

벌써 아침 9시다.

 

(장군봉의 멋진 모습)

 

죽어라고 고속도로를 달렸건만 주왕산 입구에 도착하니 오후3시 30분.

드디어 나는 전설의 산 주왕산에 첫 발을 내민다.

멀리서부터 장군봉과 기암이 우리를 맞아준다. 나는 그 위용에 벌써부터 압도당한다.

 

애초에는 주왕산국립공원 입구 상의매표소(대전사 입구)에서 절골로 내려가는 13km 6시간 30분

코스(아래 등반코스 8번)를 등반하려고 했었으나 시간 상 불가능하다.

할 수 없다. 코스를 변경할 밖에...

상의매표소에서 폭포3개를 거쳐 주왕굴을 보고 내려오는 2번 코스를 택했다.

 

주왕산 등반 코스.

 

1. 제1폭포코스 (5.2km/2시간)

    상의매표소 - (1.3 km) - 주왕암입구- (0.5 km) - 주왕암/주왕굴 - (1.1km) - 제1폭포 - (1.0 km) -   

    주왕암입구 - 상의매표소

2. 제3폭포 코스(7.2km/3시간30분)

   상의매표소-제1폭포-제2폭포-제3폭포-제1폭포-주왕굴-상의매표소

3. 가메봉 코스(1) (15km/7시간30분)

   상의매표소-제2폭포-가메봉- 내원마을 - 제3폭포 - 상의매표소

4. 가메봉 코스(2)  (13km/6시간30분)

    상의매표소-후리메기-가메봉- 후리메기 - 제1폭포 - 상의매표소

5. 금은광이 코스 (15.7km/7시간30분)

   월외매표소-월외2리-금은광이삼거리-제3폭포-제2폭포- 제1폭포 - 상의매표소

6. 주봉 코스 (11km/5시간30분)

   상의매표소-주왕산-칼등고개-후리메기-제2폭포-제1폭포-상의매표소

7. 장군봉 코스 (10.6km/5시간)

   상의매표소-장군봉-금은광이 삼거리- 제3폭포 - 제2폭포 - 제1폭포-상의매표소

8. 절골 코스 (13km/6시간30분)

    절골-대문다리-가메봉- 내원마을 - 제3폭포 - 제1폭포-상의매표소

 

(기암의 웅장한 모습)

 

(주왕산 전도: 원문을 클릭하면 확대사진을 볼 수 았습니다)

 

주왕산 (周王山)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부동면(府東面)에 있는 산. 해발고도 721m.

산세가 아름다워서 경상북도의 소금강(小金剛)이라 하며 역암·응회암·유문암 등의 화산암으로 이루

어진 기암절벽이 병풍을 두른 듯하다 하여 석병산(石屛山)이라고도 하고 경관이 금강산에 견줄만

하다 하여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신라 왕자 김주원(金周元)이 이 산에서 공부했다고 하여 주방산(周房山) 또는 대둔산이라고도 한다.

주왕산이란 지명은 신라때 주원왕이 임금 자리를 버리고 수도 하였다는 전설에서 나왔다는 설과,

중국 동진(東晉)의 왕족 주도(周鍍)가 후주천황(後周天皇)이라 자칭하며 당(唐)나라에 반란을 일으

켰다가 패주하여 이곳에서 은거한 일 등에서 주왕(周王)들과 관련지어 고려 말 공민왕 때의 왕사

(王師) 나옹화상(懶翁和尙)이 주왕산이라 이름지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공식적으로는 후자를 내세

우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이곳 주왕산에는 주왕과 관련된 전설과 명소가 많다.
주왕산 입구에서 1.5km. 떨어진 지점에는 주왕산의 수문장 (1)기암봉이 있으며, 고려 태조2년 보조

국사가 주왕의 아들 대전대군의 명복을 빌기위해 창건했다는 (2)대전사가 있다. 주왕의 딸 백련낭자

를 위해 지었다는 (3)백련암이란 여승방. 주왕이 숨어살았다는 (4)주왕암이 있으며 명소로는 (5)제1

폭포. (6)제2폭포. (7)제3폭포가 연이어져 있으며, (8)자하성. (9)시루봉. (10)급수대. (11)향로봉 등이

주왕산 11경으로 불린다.
그야말로 주왕산은 암봉과 절벽. 폭포. 전설등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라 할수 있다.

주왕산을 다녀오며 살펴볼 곳은 달기약수이다. 청송읍에서 주왕산 방향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달기약수는 옛부터 널리 알려진 유명한 곳 으로 그맛은 탄산수와 같은 톡 쏘는 맛이 성인병에 효험

이 있다 하여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그외에 부동면에 위치한 상이리 마을이다. 대전사를 통해서 주왕산을 오르는 코스가 명소고적으로

유명하다면 이곳 상이리마을 (부동중학교)은 절경이 띄어난 곳이다. 피서지로 많이 찾는 곳이지만

여름철에는 폭우등으로 주의해야한다.
주왕산의 최고봉인 왕거암을 오르는 계곡코스로 이곳 사람들은 절골 또는 신술골로 불리는데 좁은

협곡에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오른 절벽 거기에 아슬하게 걸린 소나무와 단풍... 그사이를 돌아 흐르

는 청류. 가히 절경중에 절경이라 불릴만한 곳이다.
이곳을 둘러 볼 경우라면 입구 (상이전)에서 들어가는 주산지 노거수를 한번 들러보길 권한다. 달력

의 표지그림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주산지는 수백년 묵은 노거수가 물에 잠겨 자라는 모습으로

이곳 청송군이 자랑하는 곳 이기도 하다.
주방산성으로 불리는 자하성은 이곳 대전사에서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왕이 고려군을

막기위해 3년에 걸쳐 축성했다.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낳은 전설

 

주왕은 진나라에서 복야상서 벼슬을 지낸 주의라는 사람의 9대손으로 태어났으며, 이름이 주도

였던 그는 어려서부터 천품이 범상치 않았을 뿐 아니라, 5세때 이미 글을 배워 11세 때에는 육도

삼략(六韜三略)을 통달하였고 천문지리에도 능했다고 한다.
주도는 이때부터 왕후장성을 꿈꾸면서『황하강의 물을 들이마시고 태산을 갈아 없애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주도는 진나라의 후손 중에 큰 인물이 없음을 한탄했는데, 그는 성인이 되자

장사 1백명을 거느리고 웅이산에 들어가 1만여 명의 군중을 모으고 남양땅에 웅거하니 이때가 당

나라 덕종15년 (799년, 신라 소성왕1년)이었다.
진나라의 후예인 주도(周鍍)가 후주의 천왕(後周天王)임을 자청하며 반기를 들고, 당나라의 수도

안으로 쳐들어갔으나 대패하였다. 싸움에 대패한 주도는 숨을 곳을 찾아 요동을 통하여 신라로

도망을 왔다고 한다. 그때 주도를 따르는 군사는 1천여명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후 관동(지금의 강원도) 지역을 거쳐 진성(지금의 청송군 진보면)에 다다른 주왕(周王)은 석병산

(주왕산의 옛이름)이 매우 깊고 험준하다는 말을 듣고 이곳에 숨어들었으나, 식량이 없었으므로

인근 주민의 식량을 약탈하는 등 노략질을 일삼게 되자 석병산에 많은 산적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온 나라안에 퍼졌다. 이때 당나라 조정에서 주도가 신라땅으로 도망갔음을 알고 신라에 주도를 잡아

줄 것을 부탁해 왔다. 당나로부터 주도를 잡아 달라는 부탁을 받은 신라왕은 석병산 일대의 산적들이

주도와 그의 군사들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마일성 장군과 그의 5형제들에게 토벌을 명하였다.
마일성 장군이 상장군(上將軍)이 되고 이성(二聲)은 선봉장(先鋒將),삼성(三聲),사성(四聲),오성

(五聲)은 후장군(後將軍)이 되어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진을 쳤다. 그러나 마장군의 군사들은 선뜻

주왕을 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주왕의 군사들이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위장하여 군량미가 많은 듯이 보이게 하니,

마장군 형제들은 주왕의 군사가 많은 것으로 여기고서 감히 공격하지 못한 것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마장군은 장군봉에 올라 위장해 놓은 노적가리를 향해 활을 쏘았는

데, 기암의 중간쯤에 바위가 뚝 떨어져 나간 듯한 흔적이 바로 마장군이 화살을 쏘아 바위가 떨어져

나간 것이라고 한다.
그후 마장군의 군사들이 포위하고 공격하니 주왕의 군사들이 당하지 못하고 무너졌으며, 주왕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서 주왕굴 속으로 들어가 숨었다고 한다. 주왕굴은 높은 낭떠러지에서 흐르는

폭포수가 굴 입구를 막고 있으므로 숨어 지내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왕의 천명이

다했음인지 천혜의 은신처라 방심하고 있다가 어느날 폭포수에 세수를 하기 위해 굴 입구로 나왔

가 마장군의 군사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로써 주왕은 후주천왕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마장군

형제의 철퇴맞고 운명을 다했다고 한다.
주왕굴에서 생을 마친 주왕에게는 대전(大典)이라는 아들과 백련(百蓮)이라는 딸이 있어서 현재

주왕산내에서 대전사와 백련암의 이름은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왼쪽에 장군봉, 오른쪽에 기암, 그리고 그 사이에 대전사가 보인다)

 

신라 토벌군에 쫓긴 주왕이 자신의 군사력을 속이기 위해 기암봉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보

이게 했지만 신라의 마일성 장군은 여기에 속지 않고 장군봉에 올라 화살을 쏘았다. 이에 마 장군

은 바위임을 알아채고 일거에 공격, 주왕의 군사를 격파한 뒤 대장기를 꽂았다. 여기에서 장군봉과 

기암이란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기암의 중간쯤에 푹 파인 곳이 마장군의 화살에 떨어져 나간 흔

적이라고 하는데 지금 세상에 이렇게 화살을 쏘는 사람이 있다면 전쟁 때 굳이 대포가 필요가 없을

텐데...

 

노적가리 하니까 얼핏 이순신과 관련한 노적봉이 떠오른다. 이순신이나 주왕이나 봉우리에 이엉을

씌워 노적가리처럼 보이게 한 꾀는 같지만 한 사람은 성공하고, 한 사람은 철저하게 실패했다.

실패한 이유는 상대가 속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선 장군 이순신에게 속은 상대는 일본군이고, 중국

인인 주왕에게 속지 않은 상대는 신라군이었다. 전설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애국심이 작용하는 건지,

아니면 우리 민족이 똑똑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기분이 과히 나쁘지 만은 않다.

 

 

상의매표소를 통과하면 바로 나타나는 대전사.

대전사는 일설에 보조국사 지눌이 주왕의 아들 대전 도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곳에 대전사를 짓

고, 건너편에 주왕의 딸 백련낭자를 위로하기 위해 백련암을 지었다고 한다. 신라 말 892년(진성여

왕 6)에 낭공대사가 창건하였다고도 하는데, 창건 당시 웅장한 절이었으나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

실되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보광전과 명부전 뿐이다.

특히 이곳에는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친필 목판 등이 있고, 대전사 앞 하천 건너

편에 있는 백련암에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송운정사 터가 남아 있다. 이것으로 볼 때

유독 중국과 관계가 깊은 지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여송 친필현판
목판음각(50*29cm)되어 있으며 임진왜란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사명대사에게 보낸 편지.

 

백련암

대전사 건너편에 위치한 백련암은 주왕의 딸 백련의 이름을 따서 암호를 지었다.

 

 

이번 장마에 수해를 입어서인가?

곳곳에 땅이 파여 있고 공사를 하느라 어수선하다.

절집의 고요하고 아늑한 풍경이 새삼 그립다.

 

 

 

이런 저런 생각을 뒤로 한 채 대전사를 벗어난 나의 걸음은 주왕의 전설을 찾아 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었다.

주왕암과 주왕굴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올라가는 길 내내 청량한 소리를 들려주는 주방계곡.

길 왼쪽에서는 매미가 합창을 하고 길 오른쪽에서는 계곡이 연주를 한다.

주방계곡은 기나긴 장마를 이겨내고 내 앞에 맑고 투명한 속살을 내비치고 있다.

그 속살이 너무도 맑고 시려워 차마 손을 담그기가 겁이 난다.

 

 

주왕산은 1976년에 우리나라에서 12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또한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암산(岩山) 중의 하나로 대전사 뒤편의 기

암(旗岩)을 비롯하여 병풍바위, 급수대, 학소대, 시루봉 등 많은 바위들이 있다.
천년 고찰인 대전사를 비롯한 사찰과 암자들이 있으며 아름다운 계곡(주방계곡, 월외계곡, 절골

계곡)이 있다.
폭포(제1,2,3폭포와 달기폭포)가 있고 굴(주왕굴, 무장굴, 연화굴)이 있으며, 주봉(주왕산720m),

가메봉(882m), 장군봉 등의 산봉우리가 있다. 또한 공원내에 달기약수터가 있고 아름다운 주산저

수지(注山池)가 있다.

 

학과 같은 기상을 지닌 절, 주왕암

얼마를 올랐을까.

풍경소리와 더불어 들려오는 목탁소리, 그리고 스님의 청아한 독경소리.

주왕암이 그리 멀지 않았다. 계단만 오르면 바로 주왕암이라는 말에 잠시 쉴 겸 계단에 앉아  물을

마시니 물도 달고 마음도 편하다.

주왕굴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주왕암은 통일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을 주왕의 아들 대전

도군이 부친을 기리는 의미에서 암자명을 주왕암이라고 했다고도 하고, 신라말 낭공대사가 지었다

고도 하나 모두 정확하지는 않고 아래의 대전사보다 먼저 지어진 절이라는 것만 유추해낼 뿐이다.

 

아버지 주왕의 명복을 불보살님께 기원하는 아들 대전도군의 정성이 하늘에 닿아서였을까?

암자 입구에서부터 암자를 둘러싸고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른 봉우리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봉우리 속에 포근히 쌓여있는 문간 모습을 보며 암자에 다다르는 돌계단을 하나씩 오르려니 마치

내 묵은 악행의 때가 하나하나씩 벗겨지는 것같은 착각이 들었다.

 

가학루(駕鶴樓)라?

학을 타고 가는 듯한 모양의 누각이라는 뜻인지 학을 부릴만한 기운이 있는 누각이라는 뜻인지

헷갈린다.

 

마음에서 비롯하고 마음이 으뜸이니 마음으로 부터 다 이루어 지나니라.
사람이 청정한 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행하면은 그로 부터 즐거움이 따르나니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떠나지 않듯이.
사람이 삿 된 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행하면은 그로 부터 고뇌가 따르나니
마치 수레가 소의 발자취를 따르듯이.

법구경의 "마음에 대하여" 중 일부. 

이곳에 있으면 나쁜 마음이 들일이 없으니 나쁘게 행동하는 일도 없을 것이요,

그에 따른 괴로움도 자연히 없어질 것이다.

 

주왕암을 뒤로 하고 주왕굴을 향해 출발했다. 주왕굴 가는 길은 철제난간의 연속. 지금 이 난간

을 밟고 오르는 사람들은 편하지만 이 험한 곳에 이런 형태의 철제난간을 세우려면 꽤 힘이 들었

으리라는 생각이 들 무렵 주왕굴과 만나게 된다.

 

주왕의 최후가 서린 주왕굴.

주왕굴은 높은 낭떠러지에서 흐르는 폭포수가 굴 입구를 막고 있으므로 숨어 지내기에는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주왕의 천명이 다했음인지 천혜의 은신처라 방심하고 있다가 어느날 폭포

수에 세수를 하기 위해 굴 입구로 나왔다가 마장군의 군사들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이로써 주왕은

후주천왕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마장군 형제의 철퇴를 맞고 운명을 다했다. 
 주왕이 세수하려 한 동굴벽의 폭포수는 수량이 많지 않지만 끊임없이 물이 쏟아지고 있다.

 

 

그 옆 동굴 속에는 주왕인듯한 조각과 촛불이 밝혀진 제단이 차려져 있다.

협소한 주왕굴.

한사람도 발을 뻗고 쉬기 힘든 협소한 이 곳에서 숨어 지냈다는 주왕의 신세가 애처롭기 그지

없다.

패자의 최후는 어디에서나 비참하다. 
그러나 승자가 있으면 반드시 패자가 있기 마련이고 강한 것이 이기는 것이야말로 자연의 생존

법칙이다.

그러나 역사는 잊지 않고 우리에게 또 한가지를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역사에서 영원한 승자란 존재하지 않으며 어제의 승자가 오늘의 패자가 된다는 것을….

 

문득 떠 오르는 무지개.

이렇게 가까이서 무지개를 보기는 처음이다.

폭포와 동굴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무지개의 향연에 사람들이 탄성을 자아낸다.

 

주왕암과 주왕굴 사이에 있는 약수터.

시원하게 한사발 걸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생강나무 열매.

생강나무는 상록활엽수로 꽃에서 유난히 생강 내음 비슷한 향긋한 냄새가 난다해서 붙여진 이름

이다.
미처 눈이 녹지 않은 이른 봄 2월 하순이면 노란 꽃이 피고 9월이면 열매가 붉게 익는다.

꽃이 진후에 나오는 어린 잎을 차로 달여 마시거나 잎을 말렸다가 나물로 먹기도 하며 황매목(黃

梅木 싹이 트기 전에 채취한 어린가지), 단향매, 새양나무, 아기나무, 개동백, 산동백, 동백, 동박

등으로 불린다.
개화 시기와 꽃의 색깔이 비슷하기 때문 산수유나무와 혼동되기 쉽다. 
생강나무는 줄기가 깨끗하며 꽃잎이 5장이고 이파리는 털이 약간 난 공룡 발바닥 모양이고 산수

유는 꽃잎이 4장이고 줄기가 벗겨져 지저분해 보이며 이파리가 타원형으로 세로 줄 맥이 뚜렷하

고 윤기가 나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다. 
생강나무는 암꽃이 피는 암나무와 수꽃이 피는 수나무가 따로 있어, 열매가 열리지 않는 나무도

있으며, 동백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열매로 기름을 짜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기 때문인가 하다.
생강나무의 효능은 타박상, 어혈, 멍들고 삔 데 신통한 효력이 있으며, 산속에서 실족하여 허리나

발목을 삐었을 때 잔가지나 뿌리를 잘게 썰어 진하게 달여 마시고 땀을 내면 통증이 없어지고 어혈

도 풀린다고 한다. 이밖에 건위제ㆍ복통ㆍ해열ㆍ오한ㆍ산후풍 등에 쓰이고 있다.

 

주왕암과 주왕굴을 뒤로 하고 제1폭포를 향해 걷는 호젓한 산길.

 

전망대에서 바라 본 연화봉(왼쪽)과 병풍바위(오른쪽).

 

병풍바위(왼쪽)와 급수대(오른쪽). 그 사이 협곡에 시루봉이 있으나 사진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다시 제1폭포를 향해 발길을 돌린다.

폭포는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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