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큼추억여행

[스크랩] 약산과 홍은사

오늘행복스마일 2018. 12. 27. 15:31

 

약산 입구에 위치하고 있는 오대리(梧垈里)는 오동나무 숲의 터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임하면과 길안면의 경계에 있는 마을이다. 예부터 수박을 많이 재배했으며 이 고을 어디나 그러하듯이 사과와 밭작물인 파, 마늘, 고추, 담배가 주산물이다. 오래되지 않은 오동나무가 마을길을 따라 여기저기 많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 오늘 본 것 중의 새로움이다. 지금 13시 50분.

 

 

마을이 끝나는 지점의 일주문을 지나면 부처님의 은혜와 자비 효도 사상을 널리 선양 한다는 뜻에서 홍은사(弘恩寺)라고 하는 역사가 얼마되지 않은, 그러나 잘 생긴 사찰을 만나게 된다.

 

 

신라 제42대 흥덕왕(826~836)때 어머니를 극진히 모셔 국효(國孝)라는 칭호를 받았던 홍효공(弘孝公) 손순(孫順)의 효성을 불교의 효사상으로 승화 시키고자 불교 산악인 연합회 명예총장이자 불교방송 이사이며 대현그룹  회장이신 창건주 광혜(廣慧)손현수가 1997년 10월 3일에 완공 하였다. 

 

 

"이 석종(石鐘)은 창건주 손현수 거사가 원래 경주 모량리 홍효사에 안치 되어 있었던 석종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하여 조성하였으며 높이는 100cm 너비는 55cm이다. 삼국유사 효선편에 따르면 신라 제42대 흥덕왕(826~836)때 손순이라는 효자가 살고 있었다. 그는 부친이 세상을 떠난 이후 살림 살이가 어려워 품을 팔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손순내외는 지극한 효심으로 노모를 잘 봉양 하려고 밤낮으로 애씀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어머니의 음식을 빼앗아 먹으니 어머니의 굶주림이 날로 심하여 차라리 아이를 땅에 묻어 버리고 어머니를 편히 모시려고 아이를 업고 취산의 북쪽에 가서 살을 저미고 뼈를 깎는 아픔을 참고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묻을 땅을 파는데 땅속에서 기이하게도 석종이 나왔다. 내외는 석종을 나무에 걸고 쳐보았는데 종소리가 맑고 은은 하였다. 그 소리에 감격한 손순의 아내가 "이 석종을 얻음은 아이의 복같으니 아이를 묻지 맙시다." 하였다. 손순도 그렇게 생각하여 그종을 집에 가지고 와 들보에 매달아 놓고 치니 그소리가 궁궐에 까지 울려 퍼졌다. 흥덕왕이 그 소리를 듣고 신하들에게 이르기를 " 서쪽에서 맑고 그윽한 소리가 나니 속히 연유를 아뢰어라" 하니 신하들이 그 사연을 소상히 아뢰니 왕은 "옛날 곽거(郭巨)가 아이를 땅에 묻으려 하니 하늘이 금솥을 주었고 지금 손순이 아이를 땅에 묻으려 하니 땅에서 석종이 나왔으니 이 두 효도는 천지에 귀감이라" 하고 집 한체를 주고 해마다 벼 50석을 주어 손순의 지극한 효도를 숭상하게 하였다.  원래의 석종은 신라 제51대 진성여왕(887~897)때 후백제와의 전란으로 분실되어 그 원형을 알길이 없지만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들보에 매달아서 치면 맑고 은은한 소리가 나는 기이한 석종 이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고 친절히 설명되어 있었다.

 

 

오대리에 접어들어 약산 찾아 외길로 곧장 따라 들어오다가 보면 선택의 여지가 없이 홍은사 앞마당까지 들어오게 되어 있다. 태풍이 일본 열도에 상륙하였다가 사라 졌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하늘은 빠르게 흘러가는 비구름과 바람으로 요동이 심하였지만 처마끝의 풍경은 뎅그렁....은은할 뿐이었다.

손현수 거사는 사보에도 늘 부처님 말씀을 싣고 직원들의 노고를 불심으로 답례 한다고 한다. 그런 바램 처럼 그룹의 직원들이나 이 사찰을 찾는 사람들 모두 무거운 짐들일랑 내려 놓기를 기원한다. 

 

 

홍은사 오른쪽으로 올라 왼쪽으로 내려 왔는데 각기 시작과 끝점 5분 가량씩은 무릎까지 빠지는 수풀이 우거져 있어서 몸을 사리는 이들은 돌아가는 일이 많았을것 같았다. 경운기 하나가 지나 다녔던것 같은 분위기의 하늘이 보이는 길을 오르다가 약수터를 만났는데 거기서 실뱀을 만나 집사람이 엄머야! 오그러 들었지만 곧 계란같이  생긴 버섯, 느타리같은 버섯, 지천의 패랭이 꽃, 신갈, 떡갈나무, 산초, 망개나무.....이루 셀수가 없다. 작은 바위들 또한 제각기 이름을 붙여도 좋을 만큼 아름답다. 

  

 

가을이면 잘 드러나지 않게 피어나는 송이 버섯이 많이 날것 같은 이산에 길가에 피어 있는 이런 종류들은 먹으면 큰일난다. 사람의 입장이고....산에서는 없어도 될 존재와 귀하지 않은 존재란 없는 법이다. 

 

 

임하면에 속한 이산의 군데군데 설치된 플레카드에서는 우리면의 자랑스런 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쁜 산이 하나 있으면 당연히 자랑스럽지만 약산(藥山)이라는 데야 오죽 하겠는가. 길안천에서 물놀이 하면서 쳐다보면 그냥 흔한 뒷동산으로 알았는데 과연 자랑스런 임하면의 진산이다.

  

 

여기도 정상에 와서야 겨우 아래가 보여진다. 임하호의 부드러운 풍경이다. 매미소리는 잠잠한데 가끔씩 태풍의 끝자락이 휘몰고 오는 바람은 잔가지를 다 부러뜨려 놓는다.

 

 

전망대에 앉아 커피를 한잔씩하고 풍경을 감상한다. 바닥에는 어떤 촌놈이 다녀갔는지 막걸리 두통이 개봉도 않은체 놓여 있다. 오늘 우리 둘뿐이고 아무도 없는데 주변 어딘가에 막걸리 주인, 그가 있는 것일까? 바람에 전망대가 갑자기 삐-걱 소리를 낸다.

  

 

약산은 583m. 천지개벽시에 온 세상이 물바다로 변했으나 한약 한첩 묶은 면적 만큼 남아 있었다 하여 약산 이라고도 하며 이산에는 만병 통치의 진귀한 약초가 많이 생산되고 풍병을 고칠수 있는 약수터가 있어서 약산 영봉 이라고도 한다. 물난리는 있었던게 분명한것 같다. 요 위에 있는 길안면 구수리의 새알산도 그때 꼭데기만 조금 남았다고 했다.

 

 

약산 영봉의 정기로 주변에 대성한 인물(의성김씨, 전주유씨, 예천울진임씨)이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 봉수(烽燧)가 있었다는데 지금 볼록한 봉토가 있기는 있는데 잡초가 무성하다. 멀리 길안천이 실개천처럼 보인다. 양쪽으로 길안천과 임하호를 동시에 볼수 있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막바지에 다다르니 바람이 잠잠하고 매미소리가 대신 시끄럽다. 그런데 명산,명당이라 그런지 이쪽으로 내려오는 길에는 꼭지에서 바닥까지 떠난자들의 이름없는 무덤들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지금 15시 40분 홍은사에 도착하면 15시 50분이 되겠다. 서너번 쉬고 이것저것 구경하고도 두시간이면 충분한 산행이다.   

 

 

♪ T. S. Nam - The River in The Pines

출처 : 빗방울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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