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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덕궁(昌德宮)'은 궁궐 소재 관청(궐내각사) 관원들의 업무 공간입니다
전각 | 설명 | 별칭 | |
인정전(仁政殿) | 국왕 전용 공간, 각종 교서, 전교, 윤음 등록 | 정전(正殿) | |
어전(御殿) | 국정 사무가 재가(裁可:결재)되는 선정전(宣政殿) 공간 | 편전(便殿) | |
내전(內殿) | 희정당, 대조전, 중희당 등의 창덕궁 전각 | 침전(寢殿) | |
승정원(承政院) | 어명 전달, 관보 발행, 주요 사업 감독, 독려 수행 | 정원(政院) | |
규장각(奎章閣) | 어제 어필 보관, 학술 연구, 고급 관료 양성 | 내각(內閣) | |
홍문관(弘文館) | 국왕에 대한 학문적, 정치적인 자문 담당 | 옥당(玉堂) | |
예문관(藝文館) | 교서 찬술, 춘추관(春秋館)을 겸직하여 사초(史草) 작성 | 한림(翰林) | |
경연청(經筵廳) | 국왕의 학습과 국사 논의를 위한 경연(經筵) 시행 | ||
각사 | 도총부(都摠府) | 궁궐 숙위(宿衛) 담당 오위도총부(五衛都摠府) | |
선전관청(宣傳官廳) | 국왕에 대한 시위(侍衛)와 전령(傳令) 업무 담당 | ||
수문장청(守門將廳) | 궁궐 궐문의 수비 담당 | ||
시강원(侍講院) | 왕세자(王世子) 교육 담당 | 춘방(春坊) | |
익위사(翊衛司) | 왕세자 시위 담당 | 계방(桂坊) | |
상궁방(尙宮房) | 내명부(內命婦) 궁인(宮人) 처소 | ||
예비(豫備) | - | ||
논의 | 빈청(賓廳) | 의정부, 육조 관원들의 회의 공간 | |
대청(臺廳) |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관원들의 회의 공간 |
- '동궐(東闕)'은 창덕궁(昌德宮), 창경궁(昌慶宮), 후원(後苑) 영역을 포함합니다 : 창덕궁 현황으로 (클릭) -
궁궐 | 설명 | 별칭 |
경복궁(景福宮) | 국왕이 정식으로 임어(臨御)하여 국정을 재가하는 법궁(法宮) | 북궐(北闕) |
창덕궁(昌德宮) | 국왕이 필요할 때에 임어하는 이궁(離宮) | 동궐(東闕) |
창경궁(昌慶宮) | 창덕궁 동편에 위치한 궁궐 | |
경희궁(慶熙宮) | 창덕궁이 법궁이던 시절의 이궁인 경덕궁(慶德宮)의 개칭 | 서궐(西闕) |
경운궁(慶運宮) | 고종 연간에 임어한 궁궐 | 덕수궁(德壽宮) |
창덕궁(昌德宮) | |||
소개 |
창덕궁은 1404년(태종4)에 영건을 시작하여 이듬해 10월에 완공하였다. 1592년(선조25)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창덕궁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1607년(선조40)부터 중건 공사를 시작하여 1610년(광해2)에 끝마쳤다. 광해군이 임어한 1615년(광해7) 4월부터 경복궁(景福宮)이 중건되는 1868년(고종5)까지 창덕궁이 기존의 경복궁을 대신하여 법궁(法宮)의 지위를 얻었으나, 인조반정, 이괄의 난, 정묘호란 등으로 인해 주요 전각의 소실과 재건, 개수, 확장 등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다. | ||
현재 |
대한제국(大韓帝國)이 일제(日帝)의 의해 망한 후, 순종 황제가 이왕(李王)으로 격하되어 창덕궁에 거처하였다. 때문에 다른 궁궐과 비교할 때 원형을 유지하는 전각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나, 내전(內殿)과 동궁(東宮), 궐내각사(闕內各司)의 상당 부분이 철거되거나 본래의 용도와 다르게 활용되었다.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다른 궁궐의 전각을 이건(移建)하여 짓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 ||
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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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전각 | 설명 | 별칭 |
인정전(仁政殿) | 국가 공식 의례와 조회(朝會)를 행하는 공간 | 정전(正殿) |
선정전(宣政殿) | 국왕의 국정 사무를 보는 어전(御殿) 공간 | 편전(便殿) |
희정당(熙政堂) | 국왕의 개인 생활, 침식 공간 | 대전(大殿) |
대조전(大造殿) | 왕비의 생활 공간 | 중궁전(中宮殿) |
중희당(重熙堂) | 세자의 생활 공간 | 동궁(東宮) |
성정각(誠正閣) | 세자의 학문 강학 공간 | |
승화루(承華樓) | 세자의 서재 공간 | |
시민당(時敏堂) | 세자의 사무 공간 | 정당(正堂) |
진수당(進修堂) | 동궁 공간 | |
경훈각(景薰閣) | 내전 공간 | 2층 징광루(澄光樓) |
보경당(寶慶堂) | 내전 공간 | |
관물헌(觀物軒) | 국왕 공간 | |
선원전(璿源殿) | 역대 국왕의 어진(御眞) 봉안 공간 | 구선원전(舊璿源殿) |
양지당(養志堂) | 선원전 재실 공간 | |
만수전(萬壽殿) | 대비의 생활 공간 | 대비전(大妃殿) |
영모당(永慕堂) | 대비전 공간 | |
낙선재(樂善齋) | 내전 공간 | |
석복헌(錫福軒) | 내전 공간 | |
수강재(壽康齋) | 내전 공간 |
창경궁(昌慶宮) | |||
소개 |
창경궁은 1484년(성종14)에 당시 정의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 등 세 대비(大妃)의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상왕(上王) 태종의 처소였던 수강궁(壽康宮)을 확장하면서 이룩되었다. 1592년(선조25)에 발발한 임진왜란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으며, 1615년(광해7)에 중건이 시작되어 이듬해 완료되었다. 그러나 인조반정, 이괄의 난 등으로 주요 전각이 소실되어 다시 중건하는 등의 역사(役事)가 계속되었다. | ||
현재 |
일제(日帝)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1909년(융희3) 11월에 동물원과 식물원이 창경궁 경내에 개원되고 1911년부터는 창경원(昌慶苑)으로 불려지면서 정전(正殿)인 명전전과 일부 내전(內殿)을 제외한 대부분 전각이 철거되는 등의 파괴가 가속되었다. 1983년이 되어서야 창경궁으로 명칭이 환원되었다. 현재 명정전 앞에 품계석 24개가 설치되어 있으나, 1820년대에 제작된 동궐도(東闕圖)에는 품계석이 없다. | ||
연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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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전각 | 설명 | 별칭 |
명정전(明政殿) | 국가 의례 공간 | 정전 |
문정전(文政殿) | 국왕 사무 공간 | 편전 |
숭문당(崇文堂) | 강학 공간 | |
함인정(涵仁亭) | 문신 전강(殿講) 공간 | |
통명전(通明殿) | 중궁전 공간 | |
자경전(慈慶殿) | 대비전 공간 | |
환경전(歡慶殿) | 내전 공간 | |
경춘전(景春殿) | 내전 공간 | |
양화당(養和堂) | 내전 공간 | |
연희당(延禧堂) | 내전 공간 | |
집복헌(集福軒) | 내전 공간 | |
영춘헌(迎春軒) | 내전 공간 | |
통화전(通和殿) | 내전 공간 | |
신독재(愼獨齋) | 세자 강학 공간 | |
건극당(建極堂) | 내전 공간 | |
장서각(藏書閣) | 홍문관 서고 |
후원 전각 | 설명 | 별칭 |
영화당(暎花棠) | 연회 공간 | |
연경당(演慶堂) | 국왕 생활 공간 | |
주합루(宙合樓) | 규장각(奎章閣) 공간 | |
열고관(閱古觀) | 규장각 서고 | |
서향각(西香閣) | 규장각 서고 | |
기오헌(寄傲軒) | 서재 공간 | |
관덕정(觀德亭) | 체력 단련 공간 | 사정(射亭) |
춘당대(春塘臺) | 과거 시행 공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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