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흐르는곳

[스크랩] 배호에 안개낀 장춘단 공원 / 가객(歌客) 배 호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3. 06:26

배호에 안개낀 장춘단 공원

 

가객(歌客) 배 호

1967년 3월 장충동 녹음실.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한 가수가 힘겹게 녹음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당시 신장염 투병 중이었다.
한 소절 부르고는 의자에 주저앉고 다시 일어서 한 소절 부르고...
한 시간 여 만에 힘겨운 녹음을 마치고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녹음실을
빠져나간 그 사람. 가수 배호다.
이 날 녹음된 곡은 <돌아가는 삼각지>

 

29년의 짧은 생을 살다간 가수 배호. (1971년 11월 7일 타계)
그러나 그의 노래는 35년이 지난 오늘까지 우리들 가슴에 남아있다.
이제 낡은 LP디스크 한 장이 세월의 더께를 걷어내고

오래도록 참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 목소리에 담긴

가객의 회한과 가락에 실린 그 시절의 자화상,
그리고 그에게 소리 없이 빚져온 우리 노래의 역사까지...

 

가수 배호는 60년대 후반 이미자, 최희준 등과 함께 최고의 인기를

누린 가수다. 당시 배호는 독특한 창법, 중절모와 안경을 쓴

특이한 외모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1971년 11월 7일 신장염으로

사망한 후 35년이 지난 지금도 그는 우리 가슴속에 남아있다.

2000년에는 대중가수 최초로 그의 이름을 딴 행정도로가 용산 삼각지에

생겼으며, 2003년에는 정부에서 옥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올해엔 미발표곡까지 포함된 전집앨범이 10장의 CD로 나왔다.

 

                  배호와 이미자                                           배호와 배우 문희

 

1960년대는 한국 대중음악의 부흥기로 기존의 남인수 등 전통방식의

트로트에서부터 패티김, 최희준 등의 스탠다드 팝에 기반을 둔 노래들이

공존하고 있었다. 배호는 전통과 현대 음악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이루며 그 자신만의 창법으로 대중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이다.

배호 창법의 바탕에는 나름의 음악적 배경이 있었다.
배호의 외삼촌인 김광수, 김광빈은 KBS와 MBC악단장을 역임하고

서울음대 교수로 재직했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들이었고

그들에게 음악수업을 받은 배호는 그 자신이 드러머이면서

12인조 악단을 이끌던 밴드마스터였던 것이다. 그의 창법은

충실한 음악수업과 드러머의 정확한 리듬감을 바탕으로 창조된 것이다.

 

     배호   외숙모 안마미   외삼촌 김광빈            배호와 그 악단 시절 
 

배호가 <돌아가는 삼각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것은 1967년.
그러나 배호는 1966년 이미 당시로는 불치의 병이었던 신장염으로 투병 중이었다.
1971년 그가 사망하기까지 그가 취입한 곡은 무려 200여곡,

동료의 부축을 받아야  무대에 설 수 있었던 그가 항상 하던 말은

 “죽어도 무대에서 죽겠다”였다.
숨쉬기조차 힘든 고통 속에서도 무대에 올라 노래했던 그의 가수혼을 담는다.

 

   병상에서 노래연습중인 배호      동료의 부축을 받으며 노래하는 배호


죽은 지 35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인의 애창가요 다수가 그의 노래이고
300여개가 넘는 팬클럽이 사이버 공간을 채우고 있으며,
아직도 그의 목소리를 흉내 낸 가짜 배호가 떠돌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스타들이 탄생했다가 사라지는 지금,
사후 35년인 지금에도 배호의 노래는 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왜 그를 떠나보내지 않는 것일까.

 


안개낀 장충단공원

작사: 배상태
작곡: 배상태
노래: 배  호

 

안개낀 장충단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울고만 있을까
지난날 이자리에 새긴 그 이름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한번 어루만지며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기슭에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울고만 있을까
가버린 그사람의 남긴 발자취
낙엽만 쌓여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출처 : 석동정
글쓴이 : 사랑방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