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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종의 마음을 뻬잇은 여인 엄순헌 귀비|

오늘행복스마일 2019. 1. 2. 10:29

고종의 마음을 뻬잇은 여인 엄순헌 귀비|

고종의 마음을 뻬잇은 여인 엄순헌 귀비

 

엄순헌 귀비는 영월 엄씨 엄진삼(嚴鎭三)의 장녀로 철종 5년 갑인년(1854년)에 태어났습니다.

 친정은 서울 서소문 안에 있었다고 합니다.

철종 10년 기미년(1859년)에 아기 내인(內人, 흔히 나인이라고 발음하나 내인이 옳다고 함)으로 입궁하였습니다.

이후 고종황제의 정실이신 중전 민비를 측근에서 모시는 시위상궁(侍衛尙宮)이기도 하였습니다.

 
만 32세 (1896년)에 승은(承恩)을 하였으며, 이를 안 중전 민비가 죽이려 하였으나

 고종황제가 민비에 사정하여 죽지않고 궁 밖으로 내쫓겼습니다.

고종황제는 궁녀에서 첫아들로 완화군(完和君)을 16세에 보았으나 완화군은 12세가 된 1880년에 사망하였습니다.

 
중전 민비로 부터는 중전이 만 20세가 되던 해에 왕자를 보았으나, 항문이 없었으며

  태어난지 3일째 되던날 대원군이 보낸 산삼을 다린 물을 먹였지만 5일째에 사망하였습니다.

1874년에 중전으로 부터 두번째 아들이 태어났는데 조선왕조 마지막 왕인 순종(純宗)이다.

그러나 순종은 성불구자 였습니다.

 
조선 조정은 갑오년(1894년) 음력 12월 17일에 홍범(洪範) 14조를 반포하였고,

  이 때 왕실의 존칭을 한 항렬씩 상향해서 쓰도록 결정하였습니다.

을미년(1895년) 음력 8월 20일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三浦梧樓)의 흉계로 일어난

을미사변(乙未事變)으로 왕후(王后)가 시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민후(閔后, 당시 칭호는 王妃殿下가 아니고 王后陛下였음)가 시해된지 닷새 만에

 고종은 엄상궁을 궁으로 불러들였습니다.

영친왕은 1897년에 태어났으며 1907년 황태자로 책봉되었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에 의해 일본 유학이라는 명목아래 인질이 되어 일본에 끌려갔습니다.

 
인질이 되어 끌려간지 4년째인 1911년 여름, 일본인들이 영친왕이 일본에서 지내는 모습을 활동사진기로 찍어서

 고종에게 보냈습니다.

그 필름에는 영친왕이 군사훈련을 받으면서 주먹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있었는데

이를 본 엄비(嚴妃)는 극심한 충격을 받아 급체(急滯)를 일으켜서 이틀뒤에 별세하였습니다.


출처 : 박창순 도의원의 성남愛너지
글쓴이 : 박창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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